우리네 서민들의 고향, 그 삶의 현장을 옮겨놓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2005년 10월 25일 개관한 근현대 생활사 박물관으로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하여 만든 박물관이다.
연면적 1,950.85㎡로 지하1층과 지상1층의 박물관 건물이 동구 송현동 163번지 송현근린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달동네 박물관은 기성세대들에게는 향수를, 현세대들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 될 것입니다.
수도국산달동네는 인천이 토박이인 분들에게는 정겨운 고향 같은 곳입니다. 인천에서 3대 이상을 산 토박이라면 수도국산하면 달동네를 떠올릴 것입니다. 달동네는 아직도 전국의 대도시 주변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시산업화의 부산물이지만 특히 수도국산달동네는 달동네 중에서도 그 유래와 역사가 깊은 곳입니다.
우리네 서민들의 그리운 이름 달동네
달동네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 유래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말 - 1960년대 중반 사이에 도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 들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 노후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으로, 이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이 자그마 한 언덕은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숲이었다. 송림산은 산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송현(松峴, 솔 고개)동, 송림(松林, 소나무 숲)동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산이름이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 개항 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 보가 큰 고민이었다.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水道局)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생겼다.
달동네의 어제와 오늘을 보면
달동네와 같은 ‘도시 저소득층의 집단 밀집 주거지’의 시초는 일제 강점기 ‘토막민촌’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막민촌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들이 주인 없는 산비탈이나 개천가에 허가 받지 않고 지은 것이다.
달동네도 그 중 한 형태인데, 일제의 식민정책, 8.15해방, 한국전쟁(6.25) 그리고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집중되고 주택이 부족하게 되자 빈민계층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동네 주민들은 국가 소유의 땅을 무단 점거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주 철거되거나 집단 이주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도시 내에서 일자리를 얻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따라서 쫓겨나면 다시 도시의 다른 곳에서 무허가 집을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였다.
달동네는 산비탈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집들이 자리하면서 이루어졌다. 좁고 비탈진 곳에 집을 짓다 보니 공간의 여유가 없는 반면 많은 기능을 담게 되었다.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해 냈다. 따라서 전면적인 개축보다 낡고 오래된 부분을 개보수하거나 자투리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박물관입구의 조형물에서도 달동네의 삶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달동네 삶의 흔적들
문패, 창틀, 포스터, 수도꼭지
달동네 상점
달동네는 높은 산비탈에 자리해 주변 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었다. 달동네 주변에는 예부터 재래시장이 성행하였고, 동네 입구에서 구멍가게, 연탄가게, 복덕방, 이발소 등의 자그마한 가게를 만날 수 있다.
뻥틔기 집
연탄배달
대지이발관
이발소
아빠를 따라 왔는지, 순서를 기다리는 지 꼬마 손님의 앉아있는 모습
때묻은 사진과, 라디오
송현상회
풍선, 하이타이, 전구 다양한 상회의 물건들
밥을 하는 아낙네
뭘까요?
부업으로 성냥갑만들기
이부자리
공동수도에서 물긷기
달동네는 산비탈에 위치해 교통이 불편하며, 무계획적으로 집들이 들어섰으므로 골목이 좁고 불규칙했다. 좁은 땅에 여러 사람들이 살다 보니 수도나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곤 했다. 이른 아침마다 공동화장실에 줄을 서서 앞사람을 재촉하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화장실 줄서기
구둘장 모습
식사시간입니다.
달동네 사람들의 일상의 물건
조금 잘 사는 집
텔레비젼도 있고
부엌의 살림도 제법 있으나
여기 이집의 살림살이를 보면 사는게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듬이
공부하는 학생
달동네 풍경
연탄배달,
서점인가요? 각종 만화책들이 많이 보입니다.
철거전의 달동네 속빈시멘트블럭을 응용하여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빨간마후라의 영화 간판
지금도 전국의 도시에서 밀려나 산의 높은 곳으로 옮겨간 이들의 삶의 현장, 그 달동네가 아직도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도시 개발에 밀려 헐려가는 달동네
그때까지만이라도 우리네 기성세대의 삶의 현장인 달동네가 교육의 장으로 남아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그네들의 고달픈 삶의 현장이 무슨 관광거리나고 하겠지만, 우리 선조들의 고생을 엿볼 수 있는 교육이 되지 않겠습니까?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