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꽃의 문화재답사/사적

[문화재답사/보령] 보령 성주사지 - 사적 제307호

들꽃(野花) 2008. 1. 22. 23:55

보령 성주사지 (保寧 聖住寺址) / 사적 제307호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

 

2008년 1월 19일

이번 겨울여행은 보령시를 거쳐 부여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아침 7시 집을 출발하여 대천IC를 거쳐 보령시를 우회하여 성주사지를 들른다.

성주사는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넓은 절 부지를 보면서 옛날에 번창하였을 성주사를 상기하게 한다.

인근의 돌을 모아 담장을 쌓았는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예전에도 이랬을까? 너무나 현대적이지 않나 싶다.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9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절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절과는 달리 평지에 자리하는 가람의 형식을 택하였다.


  절터에는 남에서부터 차례로 중문처, 석등, 5층석탑(보물 제19호), 금당건물과 그 뒤에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동삼층석탑,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 서 3층석탑(보물 제47호)이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도 절의 북서쪽에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의 초석, 통일신라시대의 흙으로 빚은 불상의 머리,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사는 당대 최대의 사찰이었으며,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돌로 담장을 쌓아 놓았다. 

 

보물 제19호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이 우리를 맞아 준다. 

 

석등도 있고

 

법당터를 보고 웅장하였을 법당을 상상해본다.

 

 

오층석탑 뒤 법당터 뒤로 3기의 석탑이 나란히 놓여 있다.  

 

 

 

 

 

국보 제8호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가 우리를 맞이한다. 

 

 

"코를 긁어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대문에 코가 마모된 석불입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