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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아산] 이순신 유물 일괄 - 보물 제326호

들꽃(野花) 2009. 1. 11. 17:25

이순신 유물 일괄 (李舜臣 遺物 一括) / 보물 제326호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48

 

  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에 보관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유물들이다.

 

  이순신(1545∼1598)은 선조 9년(1576) 병과에 급제하여, 47세 때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그는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군비를 비축하고 거북선을 제조하였다. 마침내 이듬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그는 적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전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한산도, 옥포, 명량 해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노량해전(1598)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숭고한 정신과 통솔력은 임진왜란 중 가장 뛰어난 무장으로서 민족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죽은 뒤에는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난중일기』와 그의 유품들이 현재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그의 유품에는 그가 전쟁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길이 197.5㎝의 장검 2점과 갓 머리에 장식으로 달았던 것으로 보이는 옥로 1점, 관복을 입을 때 두르던 각대와 모습이 같은 허리띠(요대) 1점, 복숭아 모양을 한 술잔 1쌍 이 있다.

 

  이 유품들은 임진왜란 중에 그가 사용하던 것으로, 그의 숭고한 정신이 서려있는 유물이다.


  (1)장검(長劍) 2자루 : 손잡이에는 남색 천을 십자(十字)로 감았고 칼날 끝 가까이에는 무늬가 있다. 칼집 끝에는 은(銀)으로 만든 장식(裝飾)을 물렸고, 다른쪽 끝에는 끈을 달았다. 특히 두 칼에는 다음과 같은 공(公)의 친필(親筆) 검명(劍銘)이 있다. "삼척서천 산하근색 일휘소탕 혈염산하(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 하였으니 이 뜻은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서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는 것이다. 이 한 구절 한 구절은 곧 충무정신이며 장군다운 위력이 풍기는 내용이다.

 

  한편 검신(劍身)에는 「갑오사월일주태귀연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이라 새겨져 있어 이 칼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발발 다음다음 해인 1594년에 제작된 것음을 알 수 있다. 크기는 길이가 197.5㎝이다.

 

  (2)옥로(玉鷺) 1개 : 백옥제(白玉製)로서 연화(蓮華)에 해오라기 세 마리를 투각(透刻)하였다. 고관(高官)이나 외국에 가는 사신이 갓머리에 달았던 장식품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3) 요대(腰帶) 1벌 : 보통 형식의 각대(角帶)로서 표면에는 장방형(長方形)·심엽형(心葉形)의 금속(金屬) 장식이 붙어 있고 여기 호랑이와 구름 무늬가 투각(透刻)되었다. 이 요대는 명(明)나라 유격(遊擊) 왕원주(王元周)가 공(公)에게 선사한 것이라고 전한다.

 

  (4) 도배(桃盃)와 잔받침 : 배(盃)와 대(臺)는 모두 동판(銅板)으로 만들고 도금한 것이지만 지금은 도금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도배(桃盃)란 그 형태가 복숭아와 같아서 생긴 이름이며, 꼭지쪽에 둥근 손잡이가 달렸고 표면에는 복숭아 잎 세 잎이 붙어 있다. 대(臺)는 좁은 전을 가진 둥근 쟁반 모양이고, 다른 장식은 없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의하면 무술년(戊戌年)(1598) 10월 4일 명장(明將) 진파총으로부터 화주배(花酒盃) 1대(對)를 선물로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화주배(花酒盃)가 이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상의 일련(一連)의 유물(遺物)은 충무공(忠武公)이 손수 사용하던 유물들이며, 그 중에는 진중에서 항상 좌우에 두고 있던 것들도 있어 공(公)의 인품과 정신이 서려 있는 유물이라고 할 것이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