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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아산] 전세맹고불유물 - 국가민속문화재 제225호

들꽃(野花) 2009. 1. 23. 11:39

전세맹고불유물 (傳世孟古佛遺物) / 국가민속문화재 제225호

소재지 : 충남 아산시

 

  고불 맹사성(1360∼1438)의 유품 5점이다. 맹사성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138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좌랑을 시작으로 1427년 우의정이 되었다. 우의정으로 있으면서『태종실록』편찬의 감수를 맡았는데, 세종임금이 실록을 보고싶어 하자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사관이 두려워 일을 할 수 없다 ”하여 반대했다. 집을 들어오고 나갈 때는 항상 소를 타고 다녀 사람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유품은 옥적과 백옥방인, 채석포도문일월연, 수정죽절비녀, 목칠도형배 등이다. 옥적은 피리의 일종으로 백옥으로 만든 것이며, 백옥방인은 손잡이에 당사자를 큼직하게 새긴 옥도장이다. 채석포도문일월연은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 자색 벼루의 일종이며, 수정죽절비녀는 수정을 대나무 밑둥처럼 다듬어 머리를 만들고 몸통에 구리판을 말아 끼운 비녀이다. 목칠도형배는 해당화의 밑둥치로 만든 표주박으로, 휴대하여 쓰는 음료수잔이다.


  유품들 가운데 옥적과 도장에 새긴 시문구 등은 음악과 시에 조예가 깊었던 맹사성선생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목칠도형배(木漆桃形杯)

  이 목칠도형배(木漆桃形杯)는 해당화의 밑둥치로 만든 표주박으로 휴대용 음료수 잔이다. 해당화의 중심 뿌리뿐 아니라 주변의 잔뿌리를 살려 흡사 고슴도치처럼 만들었다. 안을 깎아 만들었는데 안과 밖에 옻칠을 하였고 고리가 달려 있었으나 지금은 구멍 뿐이다.

 

백옥방인(白玉方印)

  백옥방인(白玉方印)은 손잡이에 당사자를 큼직하게 새긴 옥으로 만든 도장이며, 높이 8.2㎝, 도장의 밑면 4.2 ×4.1㎝이다. 사자는 머리가 크고 큰 귀를 늘어뜨리고 있으며 수염을 가지고 있다. 재질은 중국 복건성 수산(壽山)에서 나는 돌로, ‘죽관(竹觀) ’이라는 글자를 원 안에 새겼고, 그 좌우에는 만산명월(萬山明月)과 일사화풍(一事和風)이라는 두 구절을 새겨 주홍색으로 마무리하였다. 죽관이라는 말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고불의 알려지지 않은 호(號)가 아닌가 생각된다.

 

수정죽절비녀(水晶竹節비녀)

  이 수정비녀는 수정을 다듬어 대나무 밑둥처럼 만들어 비녀머리를 삼고 몸통에다 구리판을 말아 끼웠으며 끝부분도 수정이었을 것이나 부러져 없어졌다. 비녀의 전체길이 23.8㎝, 수정길이 8.3㎝이다. 이 비녀의 특징은 우리나라 고대 유물 중에는 순수한 구리판을 사용한 예가 매우 희귀한데, 이 비녀는 0.5㎝ 판을 말아서 주석땜을 하였다.

 

옥적(玉笛)

  옥적은 백옥으로 만든 피리로 젓대 혹은 횡적이라고도 하며, 길이 50.5㎝, 지름 2.7㎝이다. 일제시대때 네 토막으로 부러져 백동관(白銅管)으로 싸서 수리하였다. 옥은 약간 황색과 옥색이 도는 백옥계열의 돌인데, 대나무 세마디를 깎아 새겼다. 구멍이 7개인데 소리는 지금의 대금 소리와 다르고 중금 소리와도 다르다. 그러나 다른 옥적에 비하면 비교적 잘 만든 작품으로 약간의 음정 차이는 있으나 고른 음정을 가지고 있다. 상징적인 악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채석포도문일월연(彩石葡萄紋日月硯)

  이 벼루는 우리나라에서 전국적(全國的)인 분포(分布)를 보이는 자색연(紫色硯)의 일종이다. 이 벼루의 경우 두께가 25㎜에 불과한데 그 중 5㎜(부위에 따라 일정치 않음)가 담청(談靑)의 켯돌이고 양각(陽刻)된 조각자체(彫刻字體)는 7㎜정도까지 도드라지게 섭새김하였다. 또한 그 재질(材質)이나 새김 솜씨도 단연 두드러진 유물(遺物)로서 조선전기(朝鮮前期)에 제작(製作)된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이 벼루의 연재(硯材)는 평북(平北) 곽산(郭山) 지방(地方)의 채석(彩石)을 이용(利用)하였다.

 

유물전시관

 

 사액현판

 - 충효세업/청백가성

 - 영조 26년 9월 22일

 - 출처 : 동포공 맹희도 모소 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