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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해남] 윤두서 자화상 - 국보 제240호

들꽃(野花) 2011. 12. 5. 05:30

윤두서 자화상 (尹斗緖 自畵像) / 국보 제240호

소재지 : 전남 해남군 고산 윤선도전시관

 

  윤두서가 직접 그린 자신의 자화상으로 크기는 가로 20.5㎝, 세로 38.5㎝이다. 윤두서(1668∼1715)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로 호를 공재(恭齋)라 하였다. 1693년 25세때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47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2권의 문집(文集)과 화첩(畵帖)을 남긴 조선중기의 학자겸 화가였다.

 

  조선시대에 타인(他人)을 그린 초상화는 많아도 자화상(自畵像)은 많지 않은데 윤두서(尹斗緖)의 이 자화상은 박력에 있어서나 묘사력에 있어서나 단연 타(他)의 추종을 불허(不許)하는 명품(名品)이다.

 

  종이에 옅게 채색하여 그린 이 그림은 화폭 전체에 얼굴만이 그려지고 몸은 생략된 형태로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윗부분을 생략한 탕건을 쓰고 눈은 마치 자신과 대결하듯 앞면을 보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에 수염은 터럭 한올한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화폭의 윗부분에 얼굴이 배치되었는데 아래 길게 늘어져 있는 수염이 얼굴을 위로 떠받치는 듯하다.

 

  이 자화상만큼 거짓없는 외모와 정신적인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도 드물다. 털끝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얼굴, 윗부분을 생략한 검은 탕건, 정면정시(正面正視)하는 정기 어린 봉안(鳳眼), 잘 다듬어진 수염과 구렛나루, 알맞게 살찐 볼, 두툼한 입술 등은 잘 생긴 조선선비의 본보기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허목의『미수기언』이나 김시습의『매월당집』을 보면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8세기에 들어서는 이강좌, 강세황의 작품들이 전해온다. 이런 자화상 가운데 윤두서의 자화상은 표현형식이나 기법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눈에 총기가 가득한 모습이며 한참을 쳐다보니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