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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진주] 권응수장군유물 - 보물 제668호

들꽃(野花) 2009. 11. 27. 06:52

권응수장군유물 (權應銖將軍遺物) / 보물 제668호

소재지 :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35, 국립진주박물관 (남성동,진주성)

 

  조선시대 무신이었던 권응수(1546∼1608) 장군의 유물들로 장군이 쓰던 물건 및 임금에게 하사받은 물건과 집안에 내려오던 유품들을 모은 것이다. 권응수 장군은 선조 17년(1584)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르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유물의 내용을 보면 권응수 장군의 영정, 선무공신교서, 태평회맹도병풍, 장검, 유지 및 장군간찰, 교지 및 유서, 각대, 가전보첩 2첩 등이다. 권응수 장군의 모습을 담은 영정은 선조 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장군이 선무공신에 봉해질 때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선무공신교서는 공신에 봉한다는 공신도감의 증명서이고, 태평회맹도병풍은 비단 위에 임진왜란 때의 공신을 그린 4폭 병풍이다. 장검은 일본검으로 임진왜란 때 권응수 장군이 왜군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유지는 선조의 작전문으로 29매이며, 편지인 간찰은 4매이다. 벼슬 4품 이상의 명령문인 교지와 장군의 유서는 합쳐서 33매로 되어 있다. 각대는 허리띠인데 금속으로 되어 있다. 『가전보첩』은 상·하 2첩으로 되어 있는데 시가 수록되어 있어 당시 시의 서체와 시문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문이 잠겨 있어 틈새로 건물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선조(宣祖)가 화공(畵工)으로 하여금 장군의 초상화을 그리게 하여 하사한 것으로서 가로 104㎝, 세로 220㎝이며, 오사모(烏紗帽)에 호랑이 흉배(胸背)의 감색(紺色) 단령(團領)을 착용한 공복의좌상(公服椅坐像)이다.

 

 

선조 37년(1604) 10월에 하사된 선무공신교서는 정립(鄭립)이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썼으며 가로 28㎝, 세로 39.4㎝의 크기로 1등 이순신 외 2명, 2등 신점·권응수 외 3명, 3등 정기원 외 9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비단 위에 그린 채색병풍(彩色屛風)으로서 가로 104㎝, 세로 220㎝이다. 그림의 내용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공신(功臣)을 그림으로 배열하고 하단(下段)에는 공신(功臣)의 관(貫) · 생(生) ·성명(姓名)을 기록하였다. 

 

 

이 장검은 길이 73㎝, 너비 4㎝, 무게 2.4㎏이다. 임진왜란 당시 권응수 장군이 왜의 장군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손잡이에 ‘대영원년(大永元年:1521)’이라고 적혀 있다.

 

 

유지는 조선 선조 27년(1594)∼선조 39년(1606)까지 작성된 것으로 모두 28매이고, 표문(票文) 1매, 장군의 편지는 4매가 남아있다.

 

 

벼슬 4품이상의 교지와 밀부(密符)와 함께 발급하는 명령서인 장군의 유서, 녹패, 제문 등 합쳐서 33매이고, 선조 25년(1592)∼인조 2년(1624)까지 작성된 것이다. 

 

 

각대는 길이 150㎝, 너비 6.3㎝인 허리띠인데, 금속으로 되어 있다. 

 

가전보첩』은 상·하 2첩으로 되어 있는데, 상권은 가로 41.7㎝, 세로 4.5㎝의 크기로 26매이며 채팽윤·유정무·신구중 등이 지은 시 60수가 적혀있다. 27매로 된 하권은 가로 34㎝, 세로 46.3㎝의 크기로 신후담·권기언 등이 지은 시 43수가 적혀있어 당시 시의 서체와 시문 연구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