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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서울] 사직단 대문 - 보물 제177호

들꽃(野花) 2010. 8. 11. 06:52

사직단 대문(社稷壇 大門) / 보물 제177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사직동 1-38

 

  역사의 쓸씀함이 묻어나는 곳, 사직단

  하나 사람들에게는 사직단이름보단 사직공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 언제나 제 이름을 찾으려나.

  나라의 힘이 없어지는 순간에 제일 먼저 일본놈들이 하늘 일이 이런 것이었으니, 일본놈들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아버렸으니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이다.

 

  등잔밑이 어둡다 했는가.

  사무실 현관에서 걸어서 1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는데 이제야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니 이곳 사무실에 근무한지가 15년이 넘었으니 나도 참으로 무심했다고 해야할 것 같다.


  사직단이란 나라와 국민 생활의 편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곳으로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한다. 또한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새로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되면 백성을 위해 사직단<社稷壇>을 세웠다. 이러한 예에 따라 조선왕조<朝鮮王朝>를 세운 태조<太祖>도 그 3년(1394)에 사직단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곳에 잡인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주위에 토벽<土壁>을 쌓고 그 입구에 정문<正門>을 세웠다. 이 정문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다른 건물과 함께 불타 없어지고 담만 남아 있다가 그후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숙종 46년(1720) 큰 바람에 기운 것을 다시 세웠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 있는 자리는 1962년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14m 뒤쪽으로 옮긴 것이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초익공양식<初翼工樣式>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새부리 모양의 부재를 이용해 기둥 위에서 보를 받치고 있는 이중량<二重樑>을 갖춘 소박 건실한 건축물이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기법과 튼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사직단 정문의 법식과 넉넉한 느낌을 주는 건축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