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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보령] 충청수영 장교청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

들꽃(野花) 2012. 9. 18. 19:00

충청수영 장교청 (忠淸水營 將校廳)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02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장교청은 충청수영의 영사건물 중 가장 뚜렷한 형체로 유존되는 건물이다. 수영이 폐지된 후에도 오천군의 중심청사로 사용되었고, 근년에는 오천면 청사로도 사용되었었다. 지금은 북문지 동편의 구릉지 정상부에 이건(移建)되어 수영의 옛 영화를 상징하는 표지가 된다.

 

 장교청 앞에는 역대 수군절도사와 관찰사, 군수들의 모아 세운 비석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