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영랑생가 (康津永郞生家) / 국가민속자료 제252호
소재지 :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외 4필지 (남성리)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큰 자취를 남긴 시인 영랑 김윤식(永郞 金允植, 1903-1950)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 본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 밭을 포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불탑이 있었고 문화적으로는 재능과 지식을 갖춘 영랑 김윤식의 생가라는 역사문화적 가치와 함께 20세기 초반 건조물인 전통한옥과 근대 건조물의 이행기의 가옥으로서 문화변용의 한 형태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영랑의 문학적 세계를 후손에게 길이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가치가 중요하다.
김영랑 설명(야후인물참조)
시인. 전라남도 강진(康津) 출생. 본명은 윤식(允植). 영랑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여, 홍사용(洪思容)·박종화(朴鍾和)·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을 만나 문학적 안목을 키우게 되었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청산학원)]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과에 진학하였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朴烈), 시인 박용철(朴龍喆)과도 친교를 맺게 되었다. 광복 후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강진대한청년회단장을 지냈으며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다. 시작(詩作) 활동은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4행소곡 7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1934년에는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발표되었다. 초기 시는 1935년 발간된 《영랑시집》에 실려있는데, 섬세하고 순수한 한국적 정서를 세련된 감각과 율동적인 언어로 읊고 있어서, 정지용 시의 감각적 기교와 더불어 한국 순수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인정된다. 초기에는 형식에 치중한 반면 후기에는 내용에 치중하여, 194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거문고》 《망각》 《묘비명》 등은 민족항일기의 강박관념에서 나온 회의와 죽음의식이 나타나 있다. 광복 후 그의 시의 주제는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의욕으로 충만해 있다. 시집으로 《영랑시집》 《영랑시선(1949)》 《모란이 피기까지는(1975)》 등이 있다. 광주공원과 강진에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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