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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제21대 영조 - 홍릉(원비 정성왕후)

들꽃(野花) 2009. 8. 14. 23:10

[조선왕릉] 제21대 영조 - 홍릉(원비 정성왕후)

 

  •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
  • 능호 : 홍릉
  • 위치 :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 지정번호 : 사적 제198호
  • 조성시기 : 1757년(영조 33)
  • 능의구성
  •     홍릉은 21대 임금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이다. 영조는 왕후의 능지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왕비 능의 오른쪽에 자리를 비워두고 쌍릉 형식으로 조영하였다. 능 위의 석물도 훗날 자신의 능과 함께 조성될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배치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능은 정순왕후와 함께 동구릉에 자리 잡게 되었고, 이곳은 현재 빈 터로 석물만 쌍릉 양식으로 남아 있다.

        홍릉은 병풍석이 없는 능침에 12칸의 난간석, 2쌍의 석양과 석호, 3면의 곡담, 4각의 장명등 옥개 등으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숙종의 명릉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홍릉의 무석인은 투구와 등에 장식이 많이 되어 있다. 뒷면에는 문양이 촘촘히 넣어져 있는 목 가리개를 위로 올렸다. 갑옷의 등 부분에는 물고기 비늘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가슴 부분은 구름 형태의 판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 능의역사
  •     정성왕후가 1757년(영조 33) 2월 15일 66세를 일기로 승하하자 영조는 왕비의 시호를 정성, 능호를 홍릉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위치인 서오릉 지역에 명혈을 택하게 하였다. 우허제(右虛制)를 쓰게 하여 훗날 자신도 정성왕후의 옆을 지키려던 영조의 바람은 1776년(정조 1) 정조가 이 홍릉 자리를 버려두고 현재 영조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내 원릉으로 능지를 정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 생몰년도 : 1692년 ~ 1757년
  • 생애이야기
  •     21대 임금 영조의 원비인 정성왕후는 1692년(숙종 18) 12월 7일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태어났으며, 1704년(숙종 30) 숙종의 둘째 아들인 연잉군과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에 봉해졌다. 1721년(경종 1) 왕위에 오른 연잉군의 형 경종이 병약하고 후사가 없자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는데, 이와 동시에 정성왕후도 세제빈으로 봉해졌다.1724년(경종 4) 경종이 승하함에 따라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극진히 모시며 내명부를 지켰다. 1757년(영조 33) 2월 15일 소생 없이 66세로 승하하였다.

     

  • 일화
  •     영조는 정성왕후의 행장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왕궁 생활 43년 동안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고, 양전을 극진히 모시고, 게으른 빛이 없었으며,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의 신주를 모신 육상궁 제전에 기울였던 정성을 고맙게 여겨 기록한다.

        영조는 정성왕후 승하 2년 후 66세의 나이에 15세의 소녀였던 정순왕후를 다시 맞아들였으나, 한 평생을 함께 했던 정성왕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위의 행장에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