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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파주] 파주 삼릉 - 사적 제205호

들꽃(野花) 2009. 8. 15. 22:19

파주 삼릉 (坡州 三陵) / 사적 제205호

소재지 :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봉일천리)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1445∼1461)의 무덤이다. 장순왕후는 한명회의 딸로 1460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이듬해 죽었다.

  공릉은 처음에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 무덤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은 없다. 다만 양석과 둘레돌을 둘러 무덤을 보호하게 하였다. 문인석의 옷주름 등이 조선초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서툴게 만들어졌다

  순릉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1456∼1474)의 무덤으로 공혜왕후는 왕비로 봉해진 후 5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무덤 밑둘레에는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고 양석, 호석, 망주석 등의 석물이 서 있다. 난간석에 표현된 작은 기둥은 건원릉과 태종의 헌릉을 본받은 것으로 조선 초기 무덤에 쓰인 석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릉은 죽은 후에 왕으로 봉해진 영조의 첫째 아들 효장세자와 부인인 효순왕후(1715∼1751)의 무덤이다. 왕릉과 비릉은 쌍릉으로 병풍석과 난간석은 세우지 않았으나, 석상을 앞에 두었다. 장명등은 중간에 배치하였으며 무덤 밑둘레에 양석과 호석을 둘러 무덤을 보호하게 하였다. 무덤 아래의 정자각은 영조의 명에 의해서 옛날 방식으로 세웠다.

  공릉은 1층, 2층의 구분이 없으며, 무덤 아래에 있는 붉은 문에서 무덤에 이르는 길을 참도라 하는데 원래는 직선으로 만들어진 것이 일반적인 예이나 이 무덤은 지형조건에 의해서 중간지역에서 꺾였다. 중간지역이 꺾인 참도는 조선왕릉 중 공릉뿐이다.

 

 

 

영릉

  영릉(永陵)은 영조의 큰 아들 진종과 비 효순왕후의 능이다. 쌍릉으로 조영되었다. 진종은 세자의 신분으로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다가 훗날 진종으로 추존되었기 때문에, 능 또한 세자묘의 예를 따라 조영되었다가 훗날 왕릉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봉분의 병풍석과 난간석은 생략되었고, 봉분 주위에는 석호와 석양, 문석인이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석인은 조선 전기의 능인 공릉에 비해 다소 마르고 작은 편이다. 관모를 쓰고 양손으로는 홀(笏)을 쥐고 있으며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한 편이다. 관복의 소매는 길게 늘어져 있고, 팔꿈치 부근에는 세 줄의 주름이 새겨져 있다. 문석인과 함께 중계(中階)에 배치된 석마 역시 조선 전기와는 다른 형태로 겸손하게 머리를 구부린 모습을 하고 있다. 전기의 석마는 둔중한 모습이지만 영릉의 석마는 전기의 것에 비해서는 살이 약간 빠지고 날렵한 모습이다. 하계는 생략되었으며 무석인 역시 없다.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단릉이다. 전체적인 상설제도는 공릉과 같지만 순릉은 왕비의 능이므로 공릉에 비해서는 석물이 많이 있다. 순릉의 장명등은 공릉의 것과는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어 세부적인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조선 전기 장명등의 전반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점에서 비슷하다. 문무석인은 좌우 1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릉의 무석인은 머리에 투구를 쓰고 양손으로는 칼을 잡고 무관의 갑옷을 입고 목을 움츠린 모습이다. 갑옷의 선은 뚜렷하지만 얼굴은 다소 경색된 표정을 하고 있다.
  정자각의 오른쪽에 있는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공혜왕후의 비가 있다. 비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공혜왕후 순릉(朝鮮國 恭惠王后 順陵)」이라고 쓰여 있고, 1817년(순조 17)에 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순릉의 금천교가 원형을 잘 보전하고 있으며 현재의 진입 모습은 변형된 것이다

 

 

 

 

 

 

 

  공릉은 장순왕후의 능이다. 그녀가 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세자빈묘로 간략히 조영하였다.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도 없으며, 일반적으로 왕릉에 세워지는 망주석도 생략되었다. 그러나 석양과 석호가 호위하고 있는 봉분은 그 크기가 크며 혼유석과 장명등, 문석인과 석마가 놓여 있다. 석물은 조선시대 초기 형태인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석양은 네 발을 모으고 곡장(曲墻)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석호와 같이 악귀를 쫓는 기능을 한다. 이 석양은 얼굴과 뿔은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몸통은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한편 석호는 석양과는 달리 앉은 자세로 되어 있다. 봉분 뒤 좌우에 1쌍이 배치되어 있는데 위엄이 있고 용맹한 호랑이라기보다는 귀여운 고양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곡장 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악귀를 쫓는 벽사의 기능을 한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가 ㄱ자로 꺾인 점이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