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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평창] 운흥사천룡탱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들꽃(野花) 2009. 9. 29. 05:55

운흥사천룡탱화 (雲興寺天龍幀畵)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소재지 :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성보박물관

 

  이 탱화는 하단 중앙에 있는 화기(畵記)에 의하면 1755년(영조 31) 삼척 운흥사(雲興寺)에서 제작하여 봉안되었던 탱화인데, 어느 시기인지 알 수 없으나 강릉시 연곡면 유등리 백운사(白雲寺)에서 옮겨져 봉안되어 오다가 1995년 5월 20일 월정사로 옮겨져 현재 월정사성보박물관에 전시중에 있다. 운흥사는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에 소재한 신흥사(新興寺)의 옛 이름으로, 1821년(순조 21) 신흥사로 개명되어 었다.

 

  이 그림은 화기에 천룡탱(天龍幀)이라 하였듯이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을 그린 불화이다. 천룡팔부중은 불법을 수호하는 8신중(神衆)으로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달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호라가(摩호羅伽)를 말한다. 불화에서의 팔부중은 여러 형식의 신중탱화에 표현되거나 혹은 영산회상도 등과 같은 불화에 권속(眷屬)으로 등장된다. 신중탱화의 종류는 제석천(帝釋天)과 권속을 그린 제석도, 팔부중을 그린 천룡도, 제석·천룡도, 제석·범천도, 제석·범천·천룡도 등 다양하다. 그중 천룡도는 이 불화에서처럼 흔히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 일컬어지는 위태천(韋태天)과 함께 천룡팔부중을 그린 불화로 제석도와 한쌍을 이루며 봉안되기도 한다.

 

  천룡도는 갑옷을 입고 새깃털과 같은 투구를 쓴 모습의 위태천, 즉 동진보살이 이 화면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주위 혹은 아래에 팔부중이 배치되는 것이 보편적인 도상이다. 그런데 이 천룡도는 위태천이 화면 상부에 비교적 작게 표현되어 있고 팔부중이 크게 강조된 독특한 도상을 이루고 있어, 위태천이 천룡탱화에서 주존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불화의 중앙에는 흰 수염으로 덮여 있는 용왕이 용뿔을 들고 서있다. 그 왼쪽(向右)에는 사자관을 쓴 건달바가 있고, 용왕의 오른쪽에는 새 날개가 달려 있는 건달바가 그림의 바깥쪽을 바라보고 서있다. 그 밖에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기타 여러 무장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용왕을 포함한 8부중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앞 부분에는 일월관을 쓴 일궁천자(日宮天子)가 빨간머리가 위로 솟은 천왕에게 두루마리 경전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동자(童子) 3위가 그림의 하단 좌우 끝에, 그리고 상단의 위태천 옆에 배치되어 있다. 이 탱화의 가장 중요한 신중인 위태천은 화면의 상단 오른쪽에 화염에 둘러싸여 있는데, 새 깃털 장식이 있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모습이다. 위태천의 합장한 팔 위에는 봉이 가로 놓여 있다.

 

  위태천의 화면 왼쪽에는 위태천의 다른 이름인 '동진보안보살(童眞普眼菩薩)'이라는 글귀가 붉은 색 구획 안에 적혀 있다. 다시 그 화면 왼쪽에는 '천룡팔부는 허공에 충만하고 가는 빛줄기 속에도 있구나. 항상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며 항상 옹호하나니 경전을 봉행하여 영원히 흘러 통하도록 하네.(天龍八部滿虛空 都在毫光一道中 信守佛語常擁護 奉行經典永流通)'라고 적고 있어 18세기 중반이후 경전을 수호하는 기능을 가진 위태천이 신중탱화의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의 하단의 외곽에는 화기가 있는데 1755년(영조 31)에 양공비구(良工比丘) 천붕(天鵬)과 해천(海天)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화면 중앙에 용왕을 중심으로 한 팔부중과 동진보살, 천왕, 일궁천자 및 동자 3위 등이 구름을 배경으로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는데, 각 존상의 표현방식, 짙은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는 색조, 존상의 활달한 필선 등은 18세기 중엽 이후 불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반적인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18세기 중반부터는 위태천이 신중탱화의 주존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이 불화는 18세기 중엽, 즉 1755년작이지만 위태천이 그림의 우측상단에 작게 표현되고 용왕이 강조된 독특한 도상으로 이는 아직 위태천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과도기적인 상태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