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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평창] 운흥사목조아미타불좌상및복장유물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들꽃(野花) 2009. 9. 29. 06:01

운흥사목조아미타불좌상및복장유물 (雲興寺木造阿彌陀佛坐像및腹藏遺物)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소재지 :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성보박물관

 

  이 목불좌상은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신흥사(新興寺)에 있던 것인데, 1994년 7월 14일 말사(末寺) 문화재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월정사로 옮겨 성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운흥사(雲興寺)는 신흥사(新興寺)의 옛 이름이며, 1821년(순조 21) 개명되었다.

 

  불상은 크기가 자그마한 좌상이지만 안정감있는 신체비례를 지닌 단정한 모습이다. 머리에는 육계가 표현되어 있지 않아 둥그스름한 모습이며, 굵직굵직한 나발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그 중간중간에 정상계주와 반달형의 중심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 작은 코, 귓바퀴와 귓볼이 밖으로 휘어진 귀가 특징적이다. 통견의 불의는 두터우며, 양 손목 위에 걸쳐진 옷자락이 배 앞에서 크게 W자형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다. 가슴에는 가로지른 내의의 띠와 굵게 주름잡힌 내의상단이 보인다. 가슴부분까지 들어올린 양 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불상은 현재 정확한 제작시기는 알 수 없지만 1791년 개금하였다는 발원문으로 미루어 볼 때 대략 1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빼곡이 새겨진 나발, 네모진 얼굴형태, 밖으로 휘어진 귀의 모습이라든지, 통견법의의 착의법, 옷주름 등은 당시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크기는 總高 41.7㎝, 불신고 26.2㎝, 두고 15.6㎝, 안면폭 9.9㎝, 膝幅 27.3㎝, 견폭 21.5㎝이다.

 

  복장에서 조성 당시의 발원문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개금시의 원문이 발견되어 대략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 1책, 후령통(喉鈴筒) 등이 동반되어 주목된다. 개금시의 원문에는 이 불좌상은 아미타불로, 1791년 운흥사 반야암에서 홍안(弘眼), 신겸(信謙) 등이 개금하여 대사(大寺, 운흥사로 추정)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복장유물》

 

  법화경은 원래의 이름이《妙法蓮花經》으로 복장에서 발견된 것은 권(卷)1이다.“회암사…개간…(檜岩寺…開刊)”이란 간기(刊記)와“순치16년기해사월일 인경(順治十六年己亥四月日 印經)”이란 묵서명(墨書銘)이 있어 양주 회암사판(檜岩寺板, 16世紀初刻)을 1659년에 다시 인출(印出)한 것(後刷本)임을 알 수 있다. 목판본(木板本) 선장(線裝)으로 크기는 반곽(半郭) 22.8×16cm이며,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 어미(魚尾)는 대흑구상하내향흑어미(大黑口上下內向黑魚尾)로 되어 있고, 1면(半葉) 8행, 1행 13자씩으로 계선(界線)을 두고 있다.

 

  원문(60×20㎝)은 첫머리에 타불 "타불(陀佛) 원문(願文)"이라 하여 이 불상이 아미타불(阿彌陀佛)임을 밝히고 있으며, 개금에 참여한 양공(良工)은 홍안(弘眼), 신겸(信謙) 등이고, 말미에 "건륭 56년 3월 태백산 운흥사 반야암에서 개금하여 큰 절에 봉안한다.(乾隆伍拾六年辛亥三月日改金于太白山雲興寺般若庵奉安于大寺也)"는 내용이 있어 1791년(정조 15)에 개금되었으므로 불상은 적어도 그 이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기타 복장유물로는 후령통 1점(높이 5.95㎝, 직경 3.65㎝)이 있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