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청풍면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를 들러 일정을 마쳐야 한다.
제천시내에서 금성면을 지나 5월에 만개하였을 벗꽃길을 달리다 청풍대교를 건너면 바로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청풍문화재단지이다.
나는 이길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단양 쪽에서 구담봉, 옥순봉, 옥순대교를 보고 들어왔기에 벗꽃길은 집으로 가는 길에 거쳐가야 한다. 시간이 없어 금수산이나 정방사 견학은 다음으로 미워야 한다. 이곳에 오니 1992년 4월 12일 결혼식을 마치고 열차 시간이 남아 있어서 친구들과 아내와 함께 이곳에 들러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이곳은 제천팔경 중 청풍문화재단지 및 충주호반이라 하여 삼경으로 불리는 곳으로 정부의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으로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1978년 6월부터 시작하여 1985년 10월준공되기까지 수몰지역 내의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평의 부지 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여 1985년 12월 23일 개장하였다.
청소년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지금은 8만 5천평의 규모로 확대 개발되어 제천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발돋음하고 있다.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 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점이 보관되어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하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충주호의 건설로 인한 수몰민들의 한을 말이다. 고향을 물 속에 묻어야만 했던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우리네들은 항상 기억해야할 것 같다.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를 정점으로 해서 주위로 봉황이 호수위를 나르는 형상의 비봉산, 어머니 품속과 같이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금수산을 뒷 배경으로 한 청풍호반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충주호반의 수경분수에서 멋지게 분수를 쏘아 올리고 있다.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팔영루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으로 고종(재위 1863∼1907)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고 한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 지었다.
팔영루에서 바라보는 청풍대교의 모습으로 구대교의 시공상의 문제로 인해 다시 건설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84호 청풍황석리고가
청풍 황석리에 있는 옛 집으로, 앞면 4칸 규모이며 오른쪽 앞에 퇴칸을 두었다. 부엌·안방·웃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안방과 웃방 앞에는 마루를 놓았고, 사랑방 앞에는 마루 없이 옥외 취사공간인 한데부엌을 두고 머리퇴에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맞을 수 있게 하였다.
청풍 황석리 고가는 머리퇴를 둔 4칸집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83호 청풍도화리고가
도화리에 있는 옛집으로, 지금의 살림채는 ㄷ자형이나 앞쪽에 건물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바깥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고, 건넌방 앞에 부엌과 상방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안방과 웃방은 장지문을 설치해 터놓을 수 있도록 하지만, 이 집은 그 사이를 벽으로 막았는데 이것은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대청과 부엌은 집의 규모에 비해 넓은 편이다. 상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창 옆의 코쿨(관솔을 지펴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85호 청풍후산리고가
청풍 후산리에 있던 옛 집으로, 지금은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있지만 일반적인 예로 보아 안마당 앞에 사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건넌방쪽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부엌쪽은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어 오랜된 양식을 보여준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안방 뒤에 수납공간인 웃방을 둔 점과 대청 한 구석에 상제례를 위한 상청을 둔 점이 특징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89호 수산지곡리고가
지곡리에 있는 옛집으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곱은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 모양의 곡간채 및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뒤에 사랑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있으며, 건넌방이 사랑채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부엌 앞에는 고방을 두어 식료품을 저장하는데, 부엌과 고방 사이에는 판자벽을 둘렀다. 이러한 기법은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문간채 주위에는 담장을 둘러 바깥마당과 구분하고, 대문간에도 담을 설치하여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특히 안채와 곡간채 사이에도 담장을 둘러 사랑채 역할을 하고 있는 건넌방의 독립성과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 점이 특이하다.
보물 제546호 청풍석조여래입상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 읍리에서 현재 청풍문화재단지내로 옮겨진 이 불상은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볼 때 10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보인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매우 작아서 우뚝해 보이며 사각형의 얼굴은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가늘면서도 두툼한 눈, 넓적한 코, 뚜렷한 인중은 자비로운 부처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두 귀는 양 어깨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옷주름이 두껍게 처리되어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허리에는 치마를 묶은 띠매듭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는 U자형의 주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서 손가락을 구부렸고, 왼손은 늘어뜨려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내보이고 있다. 불상으로부터 3m쯤 떨어진 곳에 방치되어 있는 원래의 대좌는 8각의 연화좌로 각 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이 석불입상은 당당한 어깨, 양감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괴체화된 신체 등을 볼 때 고려시대의 작품이 확실하다.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제천금남루
조선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 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재단지 안으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탁 트여 멀리있는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한다.
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 청풍금병헌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이라고 전해지는 이 건물은 명월정이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처음 지어졌으며, 영조 2년(1726)에 다시 옮겨 짓고 이름을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광무 4년(1900)에 전체적으로 보수하였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의 오른쪽은 대청이고 왼쪽은 온돌방이다. 죄인을 가두어두던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에 없어졌다.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 제천청풍응청각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건물로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는데, 충주댐 공사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세웠는데,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다. 2층은 앞면만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 기둥을 세웠으며 난간을 둘렀다. 동남쪽으로 3단의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보물 제528호 청풍한벽루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올려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원래 위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세우면서 1983년 청풍면 물태리로 옮겨 세웠다.
구조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 건물 안에는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밀양의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의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충주호의 수경분수 모습
충주호를 조망할 있는 팔각정
수경분수가 멋지게 올라가고 있다.
멀리 청풍망월산성의 모습이 보인다.
두 나무가 만나 사랑으로 연결된 연리목이다.
시도기념물 제93호 청풍망월산성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해발 373m의 망월산 정상을 돌로 둘러쌓은 작은 성으로, 둘레는 495m이다.‘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청풍은 고구려의 사열이현이었는데, 신라에 귀속되어서는 경덕왕 16년(757)에 청풍현으로 고쳐져서 내제군으로 개칭한 제천의 영현이라 한 것으로 보아 사열이현 시대에 이 성이 쌓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성벽은 서남면에 너비 16m, 높이 3m와 남쪽에 너비 15m, 높이 4.6m가 완전한 모습으로 잘 남아 있다.
청풍면소재지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사진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하키훈련을 하고있다. 내가 다녔던 제천고등학교도 하키부가 있었는데...
청풍문화재단지의 모습과 새롭게 건설되는 청풍대교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또 다른 방향에서의 충주호의 모습
전망대
어제 강원도 평창에서 오대산, 봉평메밀꽃, 영월의 법흥사 등을 보았으며, 오늘 단양의 도담삼봉, 석문, 그 밖의 단양팔경을 본 후 이곳 청풍문화재단지의 답사로 일정을 마친다. 인천으로 가야 돌아갈 길이나 안 막혀야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비록 나홀로 한 여행이었지만 즐거움과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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