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라 메 길'
여미리에서 시작된 아라메길이 서산마애삼존불상에서 '백제의 미소'로 좋은 기운을 받으셨으니 계속 아라메길을 가겠습니다.
다음의 아라메길은 방선암(7.6km)과 서산보원사지(8.9km)구간을 가 보겠습니다. 서산 아라메길의 1구간 중 세번째 구간 즉,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 하고 지금은 쓸쓸함만이 감도는 역사의 뒤안길이라 표현하겠습니다.
사적 제316호로 지정된 서산보원사지
지금 한창 발굴 중에 있으며 발굴기간이 무려 25여년이나 계획되어 있으며 지금은 겨우 5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2005년 7월 29일 서산보원사지를 찾았을 때의 모습으로 아직 발굴 되기 전의 모습입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보고 아라메길인 용현계곡의 길을 따라 200m정도 가면 우측에 암벽이 나타나는데 이바위를 '방선암'이라 합니다.
방선암은
조선시대 해미현 내에 거주하던 당대의 선비들이 화창한 봄날에 학을 연상케하는 주변의 노송과 명경수가 유유히 흐르던 천혜의 비경인 이곳 마당바위에서 뜻있는 문인들이 모여 시회를 열어 많은 시를 지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이 바위에 '방선암(訪仙岩)'이라 새겼다고 합니다.
이 바위에 새겨진 윤선좌는 1815년 12월 13일에 운산면 용장리 용못에서 출생하여 헌종4년(1838)에 풍기군수와 통정대부, 돈영부도정을 역임하였으며, 그와 호학의 지기인 한맹유, 김진, 홍병권 문사 등과 세상사 온갖 풍진을 잊고 호연지기의 높은 문학적 풍류의 철학적 담론을 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용현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푸르고 맑은 계곡에서 선비들이 그냥 있었겠습니까? 시 한 수가 떠오르지 않나요?
시대가 시대인 만큰 시 한 수를 떠올리기보다 귀에는 이어폰, 손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오감을 빼앗긴 시대이니 여행의 참맛을 알겠습니까? 잠시 그 모든 것을 주머니 속에 넣어 버리고 이 아라메길을 걸으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심이 어떨런지요?
서산 아라메길을 가다보면 항상 만나는 길 안내 리본입니다. 바닥에는 페인트로 칠해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아라메길에서 만나는 서산보원사지입니다.
서산보원사지는
상왕산 보원마을에 있는 절터로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입니다.
이 절터에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던 것을 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 외 신라, 고려초 불교 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사적지입니다.
유물로는 백제계의 양식 기반 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보물 제104호),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보물 제102호), 975년(광종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승탑(보물 제105호),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보물 제106호), 사찰에 불교행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보물 제103호)가 있습니다.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사이로 보원사지석탑이 보이는군요. 어때요? 이 멋진 어울림!
발굴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보물 제103호 보원사지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절에서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보원사지의 모습
온통 푸프른 녹색의 자연을 온 몸으로 느껴봅니다.
보원사지오층석탑(보물 제104호)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며, 아래기단 옆면에는 사자상을 새기고 윗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2구씩 새겼다. 8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탑신에서는 1층 몸돌 각 면에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은 편으로 온화한 체감률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이 넓어진 것은 백제계 석탑 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옛 백제지역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 있고 그 위로 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고정하는 쇠꼬챙이가 높이 솟아있다.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제106호)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보물 제105호)
이 탑은 보원사(普願寺)터에 세워져있는 사리탑으로, 법인국사 탄문(坦文)의 사리를 모셔놓고 있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유명한 승려로, 광종 19년(968)에 왕사(王師), 974년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그 이듬해 이 곳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978년에 왕이 ‘법인(法印)’이라 시호를 내리고, ‘보승(寶乘)’이라는 사리탑의 이름을 내렸다.
법당이 있던 자리
현재의 보원사
보원사지석조(보물 제102호)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으로, 원형·팔각형·장방형 등이 있다.
이 석조는 화강석의 통돌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형식을 보이며, 규모가 거대하며 표면에 아무 장식이 없어 장중해 보인다. 내부 각 면에도 조각한 흔적이 없으며, 밑바닥면은 평평하고 한쪽에 약 8㎝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을 뿐이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에는 거친 다듬자국이 그냥 남아 있어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는지도 알수 없다.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지금 보고 계신 사진은 2009년 3월 1일의 보원사지의 발굴현장 모습입니다.
이사진은 2005년 7월 29일 이곳에 처음왔을 때 냇가에 핀 참나리에 나비 한 마리가 멋진 조화를 이루길래 '찰칵' 한 것입니다.
지금도 제 블르그 머리 사진에서 보실 수 있답니다.
이제 용현자연휴양림구간으로 접어들겠습니다.
계속 가렵니다.
참고로
서산아라메길의 현황도에 있는 보원사지터에 대한 용어를 보원사지로 하든가 보원사터로 하였으면 합니다. 보원사지나 보원사터나 같은 말인데 둘을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정하였으면 합니다.
[글/사진 박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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