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제24대 헌종 - 경릉(헌종, 효현황후, 효정황후)
경릉(景陵)은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는 조선 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 형태이다. 제일 우측의 능침이 헌종의 것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능침이며, 좌측이 계비 효정왕후 능침이다. 이는 우왕좌비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중국 등과는 다르게 배치되어 있어 조선 왕릉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모두 병풍석은 없고 난간석으로 세 능침이 이어져 있으며, 각 능침 앞에 혼유석을 따로 놓았다.
봉분 아래가 초계, 중계, 하계 3단의 구획으로 이루어진 영조 이전의 왕릉과는 달리 문석인, 무석인이 한 단에 세워져 있다. 문무석인의 얼굴은 입체적이라기보다는 가는 선으로 조각하여 평면적이지만 눈꺼풀과 눈동자 등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1630년(인조 8) 건원릉의 서쪽 언덕에 있던 선조의 목릉을 천장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목릉에 수기가 차고 불길하다는 원주목사 심명세의 상소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구릉을 파헤치고 현궁을 열어 보니 수기가 없어 그의 불길론은 해소되었다. 따라서 1843년(헌종 9) 춘추 16세로 승하한 효현왕후 김씨의 능을 이 자리에 조성하였다.
그로부터 6년 후 헌종이 승하하자 효현왕후 김씨의 경릉 서쪽에다 모셨다. 건원릉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헌종의 국상 이후 왕릉 택지를 위하여 13곳이나 되는 길지를 돌아다닌 끝에 찾아낸 ‘십전대길지(十全大吉地)’의 명당이라고 전해진다.
1904년에는 춘추 73세로 승하한 헌종 계비 효정왕후 홍씨를 경릉의 동쪽에 모셨다. 이리하여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봉분을 가진 왕릉이 완성되었다.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자 후에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와 신정왕후 조씨의 장남이다. 4세 때인 1830년(순조 30) 5월 6일 아버지 효명세자를 여의고, 그 해 9월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1834년 11월 13일 순조가 승하하자 헌종은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했다. 헌종은 8세의 어린 나이로 할아버지인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므로 실제의 정사는 할머니이며 순조비인 안동 김씨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되었다.
11세가 되던 1837년(헌종 3) 3월에는 안동 김씨인 김조근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았다. 이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는 왕실 외척으로서 서로 대립하며 세도 정치를 주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두 차례에 걸친 역모 사건이 발생하고, 천주교에 대한 박해 문제와 관련하여 외국 군함이 처음으로 조선 근해에 나타나 민심이 흉흉했다. 또한 국가 재정의 3대 요소인 전정, 군정, 환곡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백성들은 큰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15세의 나이에 친히 수렴청정을 거두고 정사를 돌보기 시작한 헌종은 『동문휘고』, 『열성지장』, 『동국사략』, 『삼조보감』등을 완성하였으며, 각 도에 제언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헌종은 두 명의 왕후와 세 명의 후궁을 두었다. 1838년(헌종 4) 간택령을 내려 효현성황후를 왕비로 맞이하였으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식 없이 요절하였다. 그 후 계비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스스로 간택에 참여하였다가 훗날의 경빈 김씨를 마음에 두게 된다. 그러나 간택의 결정권은 왕실의 어른인 대왕대비에게 있었고, 경빈 김씨가 아닌 홍재룡의 딸 명헌왕후 홍씨가 최종 간택되었다. 이에 헌종은 3년을 고심한 끝에 왕비가 후사를 생산할 가능성이 없다는 핑계로 대왕대비의 허락을 받아 삼간택에서 낙선한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간택후궁은 종2품 숙의로 책봉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경빈 김씨를 바로 정1품 빈에 책봉하고, 1847년(헌종 13) 창덕궁 서쪽에 별궁인 낙선재를 지어주기까지 하였다. 예술을 사랑한 헌종은 경빈 김씨와 함께 이 별궁에서 고금 명가의 유필을 벗 삼아 지내기를 좋아하였다. 낙선재에 여러 차례 불려 들어갔던 조선 후기 서화가 소치 허유(許維)의 기록에는 낙선재는 헌종이 평상시 거처하는 곳이며,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쓰여진 현판이 가득하다는 등의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헌종은 이곳에서 예술과 사랑을 누리는 생활을 2년도 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뒤로 하고 1849년(헌종 15) 6월 6일 23세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효현왕후 김씨는 영돈령부사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로서 1828년(순조 28) 3월 14일에 태어나, 같은 안동 김씨인 순원왕후의 뜻으로 10세 때인 1837년(헌종 3) 3월 18일 왕비에 책봉되었다. 4년 뒤 가례를 올렸으나, 가례를 올린 지 2년만인 1843년(헌종 9) 8월 25일 창덕궁의 대조전에서 후사 없이 요절하였다. 1851년(철종 2) 경혜와 정순의 휘호가 내리고, 후에 단성과 수원의 존호가 더해졌다. 또한 순종 때는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에 추존되었다.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는 본관이 남양인 영돈령부사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서 1831년(순조 31) 1월 22일에 태어나, 1844년(헌종 10) 9월, 14세의 나이로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헌종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으며 1903년(광무 7) 11월 15일 후사 없이 춘추 73세로 승하하여 경릉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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