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서원소장 주자영정 (忠賢書院 所藏 朱子影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
소재지 : 충남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381(충남역사박물관)
공주 충현서원(忠賢書院)에 소장되어 있는 주자영정(朱子影幀)은 총 9점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화가에 의해 제작되었다. 『충현서원지』에 실려 있는 서원의 중수기(重修記)와 사적비명(事蹟碑銘), 그리고 영정의 개모실록(改摹實錄) 등을 통해 영정의 제작 내력이 부분적으로 확인되었다. 최초의 주자 영정은 1581년(선조 14) 고청(孤靑) 서기(徐起, 1523-1591)가 직접 중국의 남경(南京)에서 가져와 봉안했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유실되었다고 한다. 충현서원은 임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중건하였고 1624년(인조 2)에 조성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한동안 영정이 없이 사판(祠版)을 받들던 충현서원에서는 1712년(숙종 38) 서원의 유학 임우기(林遇箕) 등이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묵수당(?守堂) 최유해(崔有海, 1587-1641)가 중국에서 구해온 주자 영정이 경기도 연천의 임장서원(臨?書院)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그 영정을 모사해다가 사당에 봉안하였다. 1790년(정조 14) 대대적으로 서원을 중수하는 과정에서도 기존의 낡은 영정이 다시 그려졌는데, 당시 충청감사 정존중(鄭存中, 1721-1798)은 비용과 함께 영문(營門)의 좌막(佐幕)으로 근무하고 있던 윤명택(尹命澤)을 보내 영정을 개모(改摹)하도록 하였다. 현존하는 주자영정의 수량으로 미루어 이후 19세기에도 몇 차례 더 영정의 이모 작업이 이루어졌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에 의해 충현서원이 훼철됨에 따라 주자 영정은 공주향교 존경각에 이전 봉안되었다. 1917년에야 복설된 충현서원은 1925년 지역 유림들에 의해 원래의 자리에 재건되었다. 공주향교로 옮겨 보관했던 7점의 주자 영정이 2006년 충현서원으로 이안(移安)됨으로써 현재 9점이 유전하고 있다.
충현서원의 주자 영정은 우선 많은 수량이 한 곳에 전해 내려온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또한 역사적으로 충현서원의 성쇠(盛衰)와 무관하지 않은 유물이며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장기간 동안 제작된 주자영정의 실태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그 결과 형식과 규모, 화풍이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장황은 대부분 개장되었고 보존상태도 유물에 따라 편차가 있다. 이들 9점의 주자 영정은 도상의 특징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공주 충현서원의 주자 영정 9점을 둘러싼 역사적, 회화사적 의미는 매우 복합적이며, 무엇보다 단일 장소에 유존하는 단일 성격의 유물이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재생산된 결과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드문 예로 이들 주자 영정은 전통시대 서원을 거점으로 형성된 유림문화(儒林文化)의 일면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 시대성 및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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