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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옥천] 옥천 용암사 동서삼층석탑 - 보물 제1338호

들꽃(野花) 2012. 9. 16. 23:25

 옥천 용암사 동ㆍ서 삼층석탑 (沃川 龍岩寺 東ㆍ西 三層石塔) / 보물 제1338호

소재지 :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1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552) 때 의신(義信)이 세운 사찰이다. 이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 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山川裨補)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비보사상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는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동탑은 4.3m, 서탑은 4.1m로 규모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탑의 경우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이 결실되어 새로이 보충해 놓은 것이다.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매우 간략화된 수법을 보이고 있는 이 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 중 유일하게 쌍탑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 쌍삼층석탑은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매우 간략화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석탑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간략화하는 현상이 보이고 서탑의 경우 2.3층 탑신석이 결실되어 신재(新材)로 보충하는 등 아쉬운 점이 있으나 이 석탑은 양식적인 면보다는 건립의 목적과 위치의 선정에 있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석탑의 건립 위치가 일반적인 사찰에서와 같이 대웅전의 전면이 아니라 사역(寺域)의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있는 지점에서 보면 북쪽으로는 옥천 시가지가, 남쪽으로는 용암사의 경내가 한 눈에 조망되는 입지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가람배치의 정형에서 벗어나 사방으로의 조망권이 확보되는 지점에서 석탑을 건립하는 것은 9세기에 건립된 경주 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보물 제186호)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이는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이해된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건립된 이 계통의 석탑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안동이천동삼층석탑, 영동영국사망탑봉삼층석탑, 홍천양덕원삼층석탑, 영암월출산용암사지삼층석탑, 안동대사동모전석탑, 산청법계사삼층석탑, 영양삼지동모전석탑, 증평남하리삼층석탑, 정선정암사수마노탑을 비롯하여 전국 도처에 이 같은 양식의 석탑을 건립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용암사쌍삼층석탑 역시 건립된 위치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고려시대에 건립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은 모두 단탑(單塔)임에 비해 이 석탑은 쌍탑(雙塔)이라는 것으로서, 용암사쌍삼층석탑은 조사결과 정확히 동.서방향을 유지하고 있고, 양탑의 양식이 유사하고, 지대석 하면에 물려 있는 암반의 형상을 보아 이 탑은 본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본래부터 쌍탑의 의도로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 중에 쌍탑으로서는 처음 확인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셋째,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은 대체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은 까닭에 기단부가 생략되어 있으나 용암사쌍삼층석탑은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을 불구하고 2층기단을 구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모에 있어 다른 예가 보통 2∼3m의 높이를 지니고 있음에 비해 동탑은 4.3m, 서탑은 4.1m의 높이를 지니고 있다.


  석탑은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으로 건립된 석탑 중 쌍탑으로서는 처음 확보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