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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익산] 원불교 익산성지 - 등록문화재 제179호

들꽃(野花) 2013. 1. 23. 06:00

원불교 익산성지 (圓佛敎 益山聖地) / 등록문화재 제179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신용동 344-2

 

  원불교 익산성지는 도심 내에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커다란 오픈스페이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지 내부에는 1924년 9월 익산총부를 건설하면서 최초로 지어진 본원실을 비롯 1927년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처소로 지어진 금강원 등 8개의 건물과 2개의 탑이 초창기 모습 그대로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불교 익산성지의 상징적 공간으로 종교사적, 지역사적 가치가 크다.

 

대종사성탑

 

총부 대각전

대각전 건물은 원불교에서 최초로 일원상을 봉안한 건물이다. 

원기 20(1935년)년 봄에 신축되었으며 원기 55(1970)년 개교 반백년기념관이 신축되기까지 충부 구내의 법회를 비롯하여 각종 의식과 정기훈련을 진행하는 대강당 기능을 하였다.

근대 건축양식의 목구조로 된 277.3㎡의 대각전은 단순한 외관에 출입구는 두 개로 나무어 상부에 캐노피를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우직각 지붕 위에 시멘트기와를 올리고 처마끝에는 물홈통을 설치하였다. 창호는 오르내리창이며 내부벽면은 습기 등을 방지하도록 회칠을 하였고 바닥은 창마루를 깔고 전면에 불단을 조성하였다.

원기 28(1943)년 소태산 대종사께서 이곳에서 최후의 법문을 설하셨으며 정산 송규종사와 대산 김대거 종사의 취임식이 이루어진 곳이다.

원기 40(1955)년 352.98㎡으로 증축되고 원기 71(1986)년에 내부수리가 있었으로 원기 90(2005)년 6월 18일에 국가 등록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되어 원기 92(2007)년 전면 보수공사를 시행하였다.

 

 

 

청하원

원기 17년(1932) 7월 이공주종사의 사가로 지은 집이었으나 교단에 희사 교단초기 대중의 소집회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원기 21년 9월 일제치하 원불교를 감시하기 위하여 이리경찰서 북일주재소가 설치된 집이다.

이후 원기 38년 제1대 성업봉찬 사업사무가 이루어졌으며 원기 48년 4월 수도원이 세워졌다.

원기 73년 제2대 성업봉찬 사무롸 원기 76년 대종사 탄생 1백주년 성업봉찬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구정원

이 건물은 원기 21년(1936) 5월 소태산 대종사 재세시 교정원의 각 부서가 한 건물에 모여 사무를 본 사무실이다.

원기 49년(1964)4월 개교 반백주년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원기 56년 10월까기 반백주년기념회사업의 사무와 사업이 이루어진 산실이다.

본래는 원기 20년 3월 신영기씨가 개인주택으로 지었으나 중앙총부에 희사하였다.

 

 

정신원

이 건물은 원기 26년(1941) 4월 신축되어 소태산대종사께서 외빈들을 영접하던 집이다.

해방이후 유일학림 및 원광대학교 초기 교무실로 사용되었다.

원기 38년 교단의 7대 교서 편찬을 위해 설립된 정화사가 원기 62년까지 편수업무를 완수한 집이다.

본래는 황정신행 대호법이 보육 및 탁아소시설 자육원으로 지었으나 중앙총부에 희사했다. 

 

 

본원실

일원대도를 펴기위하여 원기 9년(1924) 9월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도치재 (현 위치) 3천여평에 익산 총부를 건립하면서 최초로 지은집이다.

초가 4칸 겹집으로 최초에는 도치원이라 불리웠다. 

불법연구회(원불교 전 명칭) 간판을 처음 걸었으며, 서쪽방에 대종사가 기거 하시었다. 전무출신의 공동생활이 이루어진 곳으로 교단 초창 엿장사, 만석평소작을 하던 집이다. 원기 17년 함석지붕을 얹고 유리창을 달았으나 원기 70년 고증을 거쳐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종법실

이 건물은 원기 13년(1928) 5월에 건축되어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 기거하던 곳이다.

이어 후계 증법사인 정산종사께서 거치하던 건물이다. 현재 대종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소태산대종사성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