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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여행] 조선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

들꽃(野花) 2013. 12. 29. 06:00

[의정부여행] 조선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

 

서계박세당사랑채 (西溪朴世堂舍廊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3호

소재지 :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197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문화가 좋아 오늘도 길을 나서는 나그네

나그네의 발길은 서울과 가까운 의정부시로 향한다.

머나먼 남쪽 나라를 숱하게 다녔지만 수도권의 의정부는 너무나 가까워서인지 그동안 나그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이번에 1박2일로 의정부의 여러곳을 찾아다니려 한다.

 

 

서울지하철 7호선 장암역에서 부터 의정부시의 1박2일 여행은 시작한다.

큰 도로에서 걸어서 몇분이나 걸렸을 까 길 왼쪽 이정표에 '서계 박세당 사랑채'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인다.

안내되는 대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과 오래되어 보이는 사랑채 건물과 그 앞에 우뚝 서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은행나무가 하얗 눈을 바닥에 깔고 의젓하니 서 있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3호로 지정된 서계 박세당 사랑채이다.

 

그리고 사랑채 뒤에 영진각이란 건물이 돌담에 둘러쌓여 있다. 영진각에는 서계 박세당의 아버지 하석 박정 영정과 서계 박세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두분을 반남박씨서계공파종중에서 불천위로 모시고 있다.

 

 

 

서계 박세당 사랑채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 선생이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문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던 곳이다. 이곳에는 서계 박세당과 관련된 많은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영진각에는 아버지 하석 박정의 영정과 서계 박세당의 영정이 불천위로 함께 모셔져 있다. 또한 사랑채 앞의 계류에 괘산정, 청풍정 등의 정자와 학당 터, 그리고 묘역 등이 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인 정재 박태보를 모신 노강서원이 있다.

 

 

이른 아침 수락산으로 올라가는 길

 

 

작은 계곡의 물은 맑게 흐르고 군데 군데 잔설이 남아있는 이른 아침에 서계 박세당의 사랑채와 노강서원 등을 둘러보러 가는 길이다.

 

 

 

'서계 박세당 고택'의 안내

 

 

고택이라 옛 모습의 담장을 그려보건만 현대적인 출입문이 나그네의 길을 맞는다.

대문 오른쪽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3호로 지정된 서계 박세당 사랑채의 문화재에 대한 안내글이 있다.

 

 

넓디 넓은 마당과 사랑채 앞에 우뚝 선 은행나무가 하얀 눈과 벗삼아 겨울날의 아침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규모였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바깥 사랑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란 조선시대 집안의 남자들이 거주하던 생활공간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사랑채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 반의 평면구조로 남측에 누마루가 덧붙여져 있는 乙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랑방은 두 칸 규모에 뒤쪽으로 반 칸씩 덧달아 후원으로 출입하도록 하였고, 좌측으로는 반 칸 규모의 다락으로 오르는 문을 내었고, 밑으로는 아궁이를 두었다.

 

 

사랑채는 동쪽의 수락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서향집에서 왼쪽을 향하고 있다. 보통 좌향의 배치에서는 남향이나 남서향, 남동향을 따르는 것에 비해 이 가옥은 방향보다 배산임수의 자연지세에 따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서계 박세당 선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반남, 자는 계긍, 호는 서계 ·잠수 · 서계초수 등이다. 이조참팜 박정과 관찰사 윤안국의 딸인 양주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 현종 1년(1660)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예조좌랑 · 병조좌랑 · 정언 · 홍문과 교리 겸 경연시독관 · 북평사 등을 역임하였다.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당쟁에 혐오를 느껴 40세에 관직을 그만두고 양주 석촌동으로 물러났다. 이곳에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그의 대표적인 농학서 『색경』을 저술했다. 또한 고전연구에 관한 저술로는 『사변록』 등 많은 저술이 있다.

 

 

 

 

 

 

 

 

 

 

 

 

사랑채 뒤에 있는 서계 박선생 영진각

 

 

좌측의 초상화가 하석 박정의 영정이고 오른쪽이 서계 박세당의 영정이다.

하석 박정의 영정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석 박정(朴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인조반정에 협력했고 홍문관, 좌승지, 대사간, 병조참지, 참의, 강원도관찰사, 남원부사, 대사헌, 이조참판, 부제학 등을 지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2점의 초상화이다. 하나는 푸른색 관복상으로 가로 153cm, 세로 82cm이고, 또 다른 영정은 녹색 관복상으로 가로 169cm, 세로 90cm이다. 박정(朴正)(1596∼1632)은 광해군 11년(1619)에 문과 시험에 합격하고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쳤는데, 남원부사로 있을 때에는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찾아가는 곳  

소재지 :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