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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서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국보 제84호

들꽃(野花) 2005. 10. 15. 07:14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 국보 제84호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현지 안내글>

  우리나라에 있는 마애불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걸작품이다. 얼굴 가득한 미소는 백제인의 쾌활한 장자풍(長子風)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특유의 부드러움과 세련된 조각미는 백제인의 독특한 수법이며 이 유쾌한 미소는 '백제의 미소'로 명명되었다.

 

  중앙에 본존인 석가여래입상(높이 2.8m) 우측에 미륵반가사유상(높이 1.66m), 좌측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높이 1.7m)이 조각되어 있고, 석가여래입상의 통견한 옷자락은 U자형으로 넓고 길게 발가락까지 흘러 내렸으며 두광배(頭光背)는 머리 주위의 연꽃무늬로 구성되었다. 

 

  이 마애불의 조성연대는 두광의 3화불과 통견 법의의 고졸한 톱니형 윤곽선, 삼존의 형식으로 보아 60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특히 이곳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문물의 유입지였고 이러한 규모의 불상을 암각할 만한 큰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조성된것으로 본다.(현지 안내글)


※대좌 : 불상을 안치하는 대(臺). 불좌대, 연화좌, 암좌, 수미좌, 금수좌, 대불좌 등이 있음

   광배 : 불상 등의 배면에 광명을 표현한 것.

            머리 뒤의 원형의 것을 두광(頭光),

            등 뒤의 타원형의 것은 신광(身光)이라 함.

 

★현재의 목조보호각(1974년 건립)이 불상 보존에 방해가 된다는 결론으로 보호각 지붕만

   남긴채 철거 예정임

   (폐쇄된 보호각 때문에 통풍과 자연 채광이 안돼 보호각 내부의 습도가 높아져 곰팡이가 피는

    등 불상훼손을 가속화 하고 있으며, 보호각이 협소해 관람에도 방해가 된다)

  -2005년 6월 23일 문화재위원회 결정

 

 2005년 7월 29일 사진으로 보호각이 있는 상태

 

 

 

 2008년 3월 1일 보호각이 없어진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