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꽃의 문화재답사/기타(문화재)

부여 목은선생영당

들꽃(野花) 2008. 1. 27. 22:41

고려말 삼은(三隱) 가운데 한 분인 목은 이색(李穡)의 영정(影幀)을 모신 영당(影堂)으로

부여군 홍산면의 조선시대의 관아였던 동헌의 좌측 담장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 갈 수 없었답니다.

 

 

 

 

 

이색 (李穡 1328∼1396(충숙왕 15∼태조 5))

 

 

 

고려 말 문신·학자.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본관은 한산(韓山).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진사가 되고 1348년(충목왕 4) 원(元)나라 국자감생원이 되었다. 그 뒤 귀국하여 1353년(공민왕 2) 향시(鄕試)에 1등으로 급제하여 서장관으로 다시 원나라로 들어가 1354년 회시(會試)·전시(殿試)에 급제하였다. 원의 한림원에 등용되었으나, 1356년 귀국하여 조정에서 인사행정을 주관하고 개혁을 건의하여 정방(政房)을 폐지시켰다. 이후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 최고의 영예를 누리면서 신유학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였다. 1373년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지고, 이듬해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1375년(우왕 1) 우왕의 청으로 다시 관직에 나와 1377년 우왕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1389년(공양왕 1)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을 견제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에 의하여 유배되었다. 조선 개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이를 거절하고 1396년 여강(驪江)으로 가다가 죽었다. 그는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불교를 하나의 역사적 소산으로 보고 유·불 융합을 통한 태조 왕건(王建) 때의 중흥을 주장함으로씨, 유교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였다. 그리고 성인·호걸 중심의 존왕주의적(尊王主義的) 유교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시켜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저서로는 《목은문고(牧隱文藁)》 《목은시고(牧隱詩藁)》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

<<출처 야후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