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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서울] 서울 한양도성 - 사적 제10호

들꽃(野花) 2008. 12. 27. 21:14

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 사적 제10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누상동 산1-3외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조선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 ·방어 시설을 늘렸다. 숙종 30년(1704)에는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는데 이는 축성기술이 근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으나,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더욱 많이 파괴되었다.


  현재 삼청동 ·장충동 일대의 성벽 일부와 남대문 ·동대문 ·동북문 ·홍예문만이 남아있다. 서울 성곽은 조선시대 성 쌓는 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 삼청공원으로 시작하여 자하문으로 내려오는 길로 코스를 잡고 산행을 시작했다.

 

 

 

 

 

 

 

 

 

 

 

 

 

 

말바위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하여 말(馬)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라는 설도 있다

 

▼ 비온 뒤 안개가 자욱히 깔린 북악산 정상

 

 

▼ 숙정문의 모습들

 

 

 

 

 

 

 

 

 

 

 

 

 

 

 

 

 

 

▼ 북악산 정산

 

▼ 창의문(자하문)

 

▼ 창의문(자하문) 

 

 

북악산의 정상이 파란하늘 속에 우뚝 솟아 있다. 처음에는 자욱한 안개속에 있었는데 어느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