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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용화사의 창건 설화

들꽃(野花) 2009. 9. 17. 03:55

 

 

 

 

 

 

  용화사 창건에 얽힌 설화가 〈용화사사적〉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조선말기 임금인 고종(純宗)의 비 엄비(嚴妃)가 하루는 꿈을 꾸었다. 꿈속이지만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 문풍지를 때리므로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하늘에 오색영롱한 안개를 몰고 7색 무지개가 내당 쪽으로 뻗쳐 있었다. 깜짝 놀란 엄비는 황급히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치고 바로 앉아 하늘을 우러러 보니 선녀들에게 둘러싸인 일곱 미륵이 내당으로 들어 왔다. 엄비가 어인 일이시냐고 미륵 앞에 삼배를 올리니 맨 처음에 자리한 미륵이 말하기를, “우리는 청주 땅에 있는데 우리 몸이 지금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으니, 어서 우리를 구하여 집을 짓고 안치해 달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같은 시각에 청주군 지주(군수격)로 있던 이희복이 이와 비슷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수행승 한 분이 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 왔다. 그 스님을 살펴보니 가사 장삼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목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으며 깨진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희복은 놀라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수행승은 늪에 빠져 곤욕을 당하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깬 이희복은 이상히 여기고 방안을 살피니 꿈에서 본 스님이 앉아 있던 자리에 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더욱 괴이하게 여기고 꿈을 되새기며 날을 밝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이틀이 지난 뒤에 한양으로부터 엄비의 전교가 전해 왔다. 그것은 엄비의 꿈 이야기와 함께 불사(佛事)에 관한 일을 소상히 살피어 상계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이희복은 생각되는 바 있어 무심천변으로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니 청주 서북쪽에 있는 황량한 개울가 늪에 빠져 있는 석불이 발견되었다. 그는 사람을 동원하여 늪으로부터 7체의 석불을 건져 내고 즉시 그 사연을 엄비에게 보고하였다.

 

  청주군 지주 이희복으로부터 상계문을 받은 엄비는 매우 흡족하게 여기고 내탕금을 내리어 이희복으로 하여금 사찰을 이룩하고 7체석불을 안치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이희복은 상당산성 안에 있는 보국사를 백성들의 힘으로 옮기어 석불이 발견되었던 늪 근처에 새로이 절을 짓고 7체석불을 봉안하여 용화사라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