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여행

[익산여행] 옛 담장과 삼부잣집으로 유명한 익산 함라마을

들꽃(野花) 2009. 11. 13. 22:59

익산에서 두번째로 만난 곳은 함라의 수동마을로

이 함라의 수동마을은 삼부잣집과 옛 담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수동마을의 진짜 매력은 옛 담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담장 둘레만 300m가 넘는다는 김안균 가옥 뒤편으로 돌아 마을 안쪽 골목길로 가면 진짜 옛 담장을 만날 수 있다.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이 있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마을의 담장은 2006년에 등록문화재 제263호로 지정이 될 정도로 가치가 있는 담장이다.

 

 

 

 

탐스럽게 익은 감이 가을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먼저 함라의 유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삼한시대에는 함해국, 백제시대에는 감물아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임피군에 속하였으나 고려초 전주에 속하게 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용안현과 합하여 안열현(태종 9년, 1409년)이라 하였으며, 7년 뒤 다시 복구되어 함열현이라 하였으나 고종 32년(1895년) 현을 군으로 개칭했고 1914년 행정구역 개칭에 따라 익산군에 병합되었다.

 

함라」는 「함열」의 별호고, 함열군의 치소가 지금의 함라면 함열리였으므로 거기에서 면명이 취해졌다고 하며, 주산인 함라산에서 취해졌다고도 한다.

 

함라면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수동마을은 장삼을 입고 염주를 두른 스님이 두 팔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라는 함라산을 서쪽으로 하고 들어앉은 마을이다.

 

윗마을이란 뜻으로 머리골(首洞)이라 하던 것이 ‘목숨 수(壽)’자로 바뀌었다. 수동은 ‘숫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으뜸가는 마을이란 뜻이다. 특히 마을이 스님이 시주를 받는 주발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큰 부를 이를 명당터라고들 한다.

 

  함라의 수동마을에는 소문난 부잣집들이 있는데, 만석꾼으로 알려진 임천조씨 집안의 조해영 가옥, 김해김씨 김안균 가옥, 수동마을 바로 옆인 천남마을에는 경주이씨 집안의 이배원 가옥이 있는 데 이들 3부자를 일컬어 함라3부잣집으로 불리우고 있다.

 

  함라산과 와우산이 마을 전체를 싸고 있는 이 마을의 넓은 들은 부자마을을 연상케 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고장이라는 말은 아마도 함라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보릿고개나 춘궁기에 특히 걸인들과 식객들의 발길이 이어젔으며, 동아일보 1925년 3월 3일자를 보면, 익산 함열면에 사는 양심있는 부자가 구차한 사람에게 삼천원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곳 인심이 넉넉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함라마을의 부잣집을 중심으로 문인과 예술인들이 머물렀으며 그 외에도 많은 식객이 끊이지 않아 매일 풍악이 울리고 육물 다루는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명창 임방울도 조해영가옥에 자주 머물렀다고 한다.

 

  수동마을에 먼저 정착한 집안은 임천조씨 집안으로 수동마을은 임천조씨 씨족마을로 현재도 많은 가구가 살고 있다. 그중 조해영 집안은 일제강점기에 농장을 운영하면서 부를 이루었다.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된 조해영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었으며, ‘열두 대문 집’이라 불릴 만큰 많은 건물이 있었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헐리거나 해체되어 현재는 몸채, 부속채, 별채만 남아 있다.

 

 

 

영의정 김육이 호남지역의 대동법 실시를 여러 차례 건의한 것에 대한 선정비이다.  

 

 

 

 

 

 

 

 

 

 

 

 

 

 

 

  다음으로 정착한 집안은 김해김씨로 그중 김안균 가옥은 지방민속자료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가난한 선비 집안이었으나, 길에 쓰러진 스님을 치료해 주고 그 보답으로 스님이 정해준 자리에 묘를 쓴 후, 기울었던 가세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김안균의 조부는 진사를 지냈으며,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함화농장을 설립하면서 부를 축적하였다. 전북에서 가장 규모가 있는 가옥이며 익산에 남아있는 고가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한 건물이다. 긴 행랑채를 갖고 있는 이집을 사람들은 김진사 댁이라고 부른다. 주인이 서울에 있어 빈집으로 출입이 어렵다.

 

 

 

 

 

 

 

 

 

 

 

 

  마지막으로 이배원 가옥이 있는데 이는 시간상 들리지 못하였다. 이 가옥은 익산시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이 집안은 임피에 살았으나, 먹고살 게 없어 웅포로 가다가 함라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하룻밤을 묵는 주막 주모가 누룩을 팔라하여 작은 초가를 짓고 함라에 정착하여, 완주군 고산 누룩을 가져다 팔아 기반을 잡았다고 한다.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마치 오랫동안 살아온 것처럼 정감있는 곳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은 수려한 함라산 자락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고 면소재지 주변에 아직도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가옥들이 남아 있어 그런 것 같다. 돌담 넘어 자란  은행나무와 기와지붕을 보며 길을 거닐 수 있는 낭만을 연출할 수 있는 곳은 이곳 함라의 자랑이라 할 수 있겠다.  (위의 내용은 익산시의 익산관광스트리텔링전자북을 참조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