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여행

[울진여행] 연못 속에 비치는 부처님을 찾는 불영계곡의 불영사

들꽃(野花) 2010. 11. 14. 06:00

불영계곡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불영사

 

연못에 부처님이 계신 절을 아십니까?

궁금하시면 경북 울진의 불영사를 찾으십시오.

불영사의 불영지 연못에서 부처님을 찾으세요.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답니다.

 

부처님을 만나러 갑니다. 

 

 

청명한 가을날 불영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불영사를 찾습니다.

일주문에 천축산불영사라고 씌여 있습니다.

이곳이 불영사라는 것을 알려주네요.

이제 속세를 벗어나 불심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한적한 길을 걷습니다.

 

 

저 다리를 건너야 되는 모양입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불영계곡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불심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즐거운 오후 산책을 하러 간다 생각하시고 걸어보십시오.

걷다보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파란 하늘

울창한 송림

송림 가운데 우뚝선 바위

그 밑에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

삼위일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불영사가 멀리 있나 봅니다.

 

 

바위에 글이 새겨져 있네요.

뭘까요.

읽어보겠습니다.

'불타미아무남'

잘못 읽었나요?

 

천축산의 불영사는

의상스님이 창건하셨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천축산에서 계실 당시의 형상과 똑같은 절터를 찾던 의상스님이 이곳 천축산에서 피로에 지쳐 연못가에서 쉬던 중 우연히 연못 위에 부처님 형상이 비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용들이 살던 연못을 메워 금당을 짓고 부처님 영상이 나타난 곳이라 하여 불영사라 명하고, 부처님 영상이 나타난 곳에는 무영탑을 조성했다고 전합니다.

 

이제 전각들이 보입니다.

 

 

대웅보전과 삼층석탑이 보이고

 

보물 제 1201호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절에서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중심 법당을 가리키며 지금 있는 건물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11년(1735)에 세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씩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각 공포의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건물에 색을 칠한 단청 부분을 들 수 있는데 바깥쪽은 다시 칠하여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안쪽은 그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천장부분을 비롯한 벽, 건물을 지탱하는 굵직한 재료들에 그림을 그린 기법들은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건축양식과 기법연구, 격조 높은 불교그림과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135호 삼층석탑

 

보물 제1272호 영산회상도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불상의 뒷벽에 위치한다.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 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 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조선 영조 9년(1733)에 그려진 이 그림은 격조있는 양식, 양호한 보존상태 등으로 18세기 초 조선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처음에 뭐라고 하였죠?

연못에서 부처님을 찾으시라고 그랬죠.

이제 찾으셨나요?

산에 있고 물 속에도 있답니다.

 

명부전 

 

보물 제730호 응진전

 

응진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가섭과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1984년 수리 공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임진왜란 전·후에 여러번 고쳐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원래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4짝 여닫이문을, 양쪽 칸에는 작은 창을 달아 놓았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건물에 남아 있는 단청은 안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문양을 살펴볼 수 있다.

 

 

담쟁이덩굴이 담에 붙어 붉게 물들며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푸른 잎사귀를 보니 아직 가을이 여물지 않은 모양입니다.

 

굴참나무의 잔재 위에 돌탑이 쌓여 있습니다.

이 굴참나무는 1964년 천연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된 울진 불영사 굴참나무였으나 고사되어 1969년 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대사가 불영사를 창건한 기념으로 심었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이며, 이 나무의 나이는 고사 당시 약 1,300년으로 추정되었으며, 당시 나무의 크기는 높이 35m, 둘레 약6.2m였다고 합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불영사부도

 

불영사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 자리하고 있는 사리탑으로, 조선 전기의 승려인 양성당 선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양성당 선사의 이름은 혜능(惠能)으로, 12세에 출가하여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숙종 22년(1696)에 돌아가셨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사리가 발견되어 이곳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모셔두었다 한다.

 

 

이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