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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여행] 망향탑을 쌓아야 했던 어린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들꽃(野花) 2011. 4. 9. 06:00

[영월여행] 망향탑을 쌓아야 했던 어린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따뜻한 봄날

왠 겨울사진?

이 이야기는 2011년 2월 2일 바로 설 전날의 여행기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진

바로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의 겨울 사진이다.

다름 아닌 바람쏘이기를 좋아하는 딸래미와의 겨울나들이의 결과다.

집사람은 설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데 간이 부은, 겁을 상실한 두 부녀는 카메라를 챙겨 영월로 나들이를 간다.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는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 동네, 다름 아닌 나의 고향이다.

고향이 이쪽이라 제천, 단양, 영월 등의 지리는 훤히 알고 있어 그냥 발 닿는 대로 떠나면 된다.

어디를 갈까?

영월의 청령포를 갈까?

길을 떠난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딸래미와의 드라이브, 집사람이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즐겁다.

예전에는 제천에서 영월로 가는 길이 2차선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고 넘어 가야했는데 지금은 시원스레 4차선의 도로가 뚫려 영월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청령포를 가면 늘 바로 강을 건너가는 게 아니라 주차장에서 떨어진 소나무 숲 속에 있는 왕방연의 시조비를 본다.

 

꽁꽁 얼어버린 서강의 강물

그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송림이 울창한 청령포

저 송림 속에 그 옛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망향대, 관음송, 금표비 등

무슨 일이? 

 

청령포는 명승 제 50호로 지정

왕방연의 시조비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청령포

 

왕방연 그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단종에게 사약을 전해야 하는 금부도사

그도 사람이었기에 어린 단종에게 사약을, 그리고 시체를 강에 버려야 했던, 그 시체를 거둬들이는 사람에게 엄벌을 내린다는 명령을 전하는 사람

어쩌면 그도 피해자가 아닐까?

 

 

 

이곳은 1457년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시조를 읊었던 곳이다.

 

千萬里 머나먼 길의

고은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듸 엽셔

냇가의 안쟈시니

뎌 물도 내 안 갓도다

울어 밤길 예놋다

 

1617년 병조참의 용계 김지남이 영월 순시 때 아이들이 이 시조를 노랫가락으로 부른 것을 듣고 한시를 지어 후세에 전하게 된 것이다.

 

 

다시 청령포 주차장으로 돌아와 청령포로 들어간다.

서강의 강물이 꽁꽁 얼어붙어 있어 배를 이용하지 못하고 얼음 위를 걸어 건너야 한다.

 

왕방연 시조비를 볼 때

두 부부가 있었는데 그 분들에게 이곳에 대해 설명을 드렸더니 고맙다며

왕방연시조비, 청령포, 관음송 등을 보고, 장릉까지 함께 하였다.

고맙다고 나중에 연락을 달라고 한다.

 

꽁꽁 언 강

그분들은 여기서 손으로 얼음 위에서 끌어주며  마냥 재미있어 한다.

 

언제나 움직이려나?

 

강 건너 소나무 숲 속에 왕방연의 시조비가 있다.

 

나무데크를 만들어 놓아 흙길을 밟는 재미가 사라져 아쉽다.

 

청령포 안에 있는 궁녀들의 숙소

 

단종이 기거했던 곳

 

비석이 있는 자리에 단종임금이 거처하던 집이 있었다고 한다.

 

 

 

 

 

시중을 들던 궁녀들은 단종임금이 죽자 강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그곳을 낙화암이라 한다.

 

 

 

이런 소나무 숲길이 나는 좋다.

그냥 한없이 걷고 싶다.

 

 

관음송

단종의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 하여 관음송이라 이름 지어졌고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망향탑

청령포의 서쪽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그리며 쌓았다는 탑으로 단종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가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심정

그 심정이 오죽하였으랴.

 

 

노산대

 

금표비

이곳은 임금님이 거처하던 신성한 장소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