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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여행]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낸 논산의 노강서원

들꽃(野花) 2012. 5. 31. 06:00

노강서원 (魯岡書院)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0호

소재지 : 충남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227

 

  노강서원은 숙종 1년(1675) 김수항의 발의로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숙종 8년(1682)에 사액을 받은 후 윤황의 아들 석호 윤문거를 추향하고, 경종 3년(1732)에는 노서 윤선거와 그의 아들인 명재 윤증을 추향했다. 숙종 43년(1717) 정쟁으로 인해 윤선거·윤증 부자가 관직이 삭탈되면서 사액 현판까지 철거됐다가 경종 2년(1722) 두 사람의 관직이 회복되면서 현판도 복액되었다.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도 철폐되지 않고 330여 년 동안 원래 위치를 잘 지키고 있다.

 

  노강서원은 동북쪽 노성의 호암산 자락이 길게 뻗어 이룬 나지막한 구릉을 등지고 자리 잡은 마을 뒤에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을 전방으로는 개천이 감돌아 가고 그 앞으로는 넓은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야거형(野居形)입지이다. 이런 평지에 배치하여 공간적 위계를 부여하는 입지환경은 주로 기호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초입에 서 있는 홍살문을 지나서 곧바로 만나는 솟을외삼문을 들어서면 마당 건너에 강당이 크게 자리 잡고, 그 앞쪽 좌·우측에 동·서재가 대향하여 강학공간을 이루고 있다. 강당 뒤편 높은 곳에는 내삼문과 사당이 일곽을 이루며 제향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앞쪽에 강학공간을 두고 그 뒤로 제향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이며, 외삼문·강당·내삼문·사당을 일축선상에 놓고 동·서재를 대칭으로 앉혀 정연한 배치구도를 갖게 했다.

 

 

 

 

 

 

노강서원이 건립된 17세기 후반은 대체로 정형의 배치가 해체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노강서원은 이전 시기의 엄격한 질서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한 내삼문도 일반적인 1동으로 하지 않고 3동으로 하여 예적질서에 따라 신과 사람의 출입동선을 확연하게 구분하였는데, 이는 흔치않은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노강서원은 1675년에 건립한 이후 한 차례도 이건하지 않고 대원군 때 훼철되지 않은 기호유학의 대표적 서원으로 들판에 입지하여 예적질서 체계를 부여한 전학후묘 형식으로 기호지역의 배치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강당은 충남지역에서 대표적으로 큰 규모이며, 이에 적절한 모양새의 기단과 초석이 화려함과 검박함으로 융합된 1출목3익공의 공포 형식이 돋보인다. 맞배지붕에 덧붙은 ‘영’은 아주 귀한 시설로 풍우로부터 훼손을 방지하고 어색하게 높은 건물의 외관을 시각적으로 안정되게 할 뿐 아니라 팔작지붕의 곡선미를 조심스럽게 더해서 검소함을 잃지 않게 한 뛰어난 기법을 엿보게 한다. 청방간의 맹장지 4분합 굽널띠살 들문은 17세기 초 건물에서 주로 찾아 볼 수 있는 창호로 옛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처럼 노강서원 강당은 기호지역 유교건축의 귀중한 양식적 특징과 지역성 그리고 17세기 말 서원건축의 시대적 양상을 잘 살펴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