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린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난다.
나홀로 떠난 여행
얼마만의 여행인가?
2박 3일간의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여행
작년 10월의 마지막에 한계령을 넘어 울진까지 남녁방향을 향해 떠난 여행에 이어 두번째 2박 3일의 여행이다.
사람들은 그럴것이다.
무슨 재미로 홀로 가냐고
그 답은 길을 떠나면 자연히 알게 된다.
어디로 갈까?
2박 3일간의 여행 계획을 잡는데 참 많이도 망설여진다.
코스를 어디로,
그래 작년에 울진까지 갔으니 그 아래로 가보자.
어두운 밤길을 달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단양의 도담삼봉이다.
도담삼봉을 시작으로 나의 2박 3일간의 여행이 시작된다.
다녀온 곳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날
단양 도담삼봉, 죽령
영주 죽령 옛길, 비로사, 영풍 단촌리 느티나무, 영풍 태장리 느티나무, 영주 순흥 벽화 고분,
초암사, 성혈사, 소수서원, 금성대군 신단,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 부석사
- 숙소 : 영주시내 모텔
둘째날
영주 무섬마을
봉화 청암정, 닭실마을,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및 지림사, 축서사, 청량산 청량사
- 숙소 : 백암온천의 백암스프링호텔
셋째날
영덕 유금사, 반송정, 장육사, 화수루, 강구항, 도천리 도천숲
이것이 나의 여행 결과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의 두다리와 나의 애마가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길을 떠나는 것이 좋다.
지금 이순간에도 길을 떠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떠날 수 있다.
길을 떠난다.
어둠이 깔린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저 앞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마치 고향에 가는것과 같다.
제천이 고향인 나는 고향에 갈때 이 길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
새로운 길, 처음으로 달려보는 길, 나는 그런 길이 좋다.
고속도로처럼 시원스레 뚫린 길이 아니라 꾸불꾸불한 고갯길을 넘어가는 그런길이 좋다.
달리면서 주변을 보는 그맛
시간의 흐름이 멈쳐저버린 듯한 그런 기분
차를 세우고 싶으면 세우고, 가고 싶은면 가고 그런 길을 가는 것이 좋다.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그런 여행이 좋다.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 단양의 도담삼봉에 도착한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 주차비를 받지 않아 기분이 좋다. 왠지 주차비나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주차장에는 정차되어 있는 차량들이 눈에 보인다.
새벽녘의 도담삼봉을 사진에 담으려 온 분들이 보인다.
단양 도담삼봉(명승 제44호)
어둠이 살짝 깔린 도담삼봉에 작은 배가 운치를 더해주고
비록 멋진 일출은 아니지만 안개가 살짝 끼여 있는 주변 풍경이 너무 멋지다.
도담삼봉을 보고나니 배가 허전하다.
단양읍내에서 간단히 올갱이국 한그릇을 꺼뜬히 해치운다.
길이 있으니 가야한다.
물이 가득한 충주댐을 오른쪽에 두고 강변길을 달려간다.
저기는 수양개박물관이고, 저 산위에는 적석산성과 적성비가 있고, 저기는 제 작년에 왔다간 단양공고가 있네
단양공고 아래 냇가에서 텐트치고 올갱이 잡던 생각이 난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죽령재를 넘을 수 있으나
그것은 나의 여행과 거리가 멀고, 구 길을 이용하여 죽령재를 넘는다.
죽령재 정상에 도착하여 죽령옛길을 본다.
마침 하얀메밀꽃이 피어 있어 죽령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죽령의 단양쪽은 아직 죽령옛길이 개발이 되어 있지 않다.
죽령재에서 만난 메밀꽃
고개를 넘어가니 영주쪽 죽령이다.
영주방향의 죽령옛길(명승 제30호)
희방사역(소백산역)에서 죽령 옛길을 걸어본다.
풍기읍을 살짝 지나며 비로사로 향해 달려간다.
가는 길가에는 노란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소백산맥쪽으로 들어갈 수록 길은 좁아지고 멋진 풍경길이 나타난다.
저 앞에 차량을 정지시키는 무엇인가가 보인다.
차를 세우니 소백산국립공원 관리직원이 나오더니 주차비를 내라고 한다.
지금 비로사를 가는 길이라고 하니 신도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차 어딘가에 있는 데 찾지를 못하겠고 그냥 들어갈 수 없냐니까.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관리소 직원이 비로사까지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위에 주차장에 차량들이 가득하여 여기에 차를 세우고 1.8km를 걸어서 가야한다고 한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1.8km를 걷는다. 왕복 3.6km
이건 아니다. 차라리 다음에 가자 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다음 코스로 가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길을 간다.
영풍 단촌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3호)
영풍 단촌리 느티나무는 약 700년 정도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높이 16.4m, 둘레 10.3m의 크기이다. 매년 추석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단촌리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섬겨지고, 음력 8월 보름에 온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서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는 신성한 나무로서 학술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영풍 태장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4호)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에 있는 느티나무는 약 6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8m, 둘레 8.7m에 달하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11.5m, 서쪽이 14.1m, 남쪽이 12.4m, 북쪽이 11.5m이다. 1986년 외과수술을 실시하여 썩은 부분을 제거하였다.
마을 앞에서 자라는 정자목이며 1971년에 나무 밑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였고 음력 정월 보름날에는 온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앞에 모여서 새해의 행운(幸運)을 빌어 왔다고 한다. 바로 옆에 도로가 있고 개천이 흐르고 있다.
영주 순흥 벽화 고분(사적 313호)
영주의 부석사
풍기에서 부석사로 가다가 순흥면소재지를 지나면 좌측으로 소백산 자락으로 가는 초암사 이정표를 만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세우고져 초막을 짓고 잠시 머물던 곳에 절을 지은것이 현재의 초암사다.
그러고보면 부석사보다 초암사가 더 역사가 깊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초암사에 대한 자세한 연혁이 기록에 전하지 않고, 현재 초암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원 삼층석탑과 고려시대 초에 세운 동 · 서부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뿐이다.
당시 쌓은 거대한 크기의 축대와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볼때 상당한 규모의 절이었을 것 같다.
또한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진정 스님이 머물렀던 곳이 이곳이라는 설이 있다.
즉 의상대사가 진정 스님의 어머니를 위해 제자 3,000명에게 90일 동안 『화엄경』을 설하였던 추동이 바로 초암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로사에서도 전하는 말로 지금은 어디라고 확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죽계구곡을 거치며 초암사로 가는 길
계곡 좌측에는 작은 길이 있고 가운데는 계곡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다.
등산하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작은 길이 북적여서 조심조심 산길을 달려간다.
달리는 차의 창문을 내리고 맑은 공기와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듣는다.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 지는 것 같다.
차를 초암사 경내에 주차시킬 수 있으나 초암사 조금 아래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간다.
보통 절에 있는 일주문이나 금강문이 보이지 않고 바로 범종각이 눈에 들어온다.
범종각, 대웅전, 대적광전, 삼성각 등의 전각과 범종각이 있다.
영주 초암사
초암사 삼층석탑은 찾았지만 부도 2기는 보이지 않는다.
가람배치도 없고 안내도 없어 조금 아쉬웠다.
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이 성혈사다.
성혈사에는 보물 제832호로 지정된 영주 성혈사 나한전을 보기 위함이다.
성혈사는 내게는 잊지 못할 사찰이다.
왜냐면 지금도 나의 왼손에는 뭔가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름아니라 성혈사에 도착하여 큰법당을 구경하는데 스님게서 점심공양을 하였나고 여쭈길래 아직이라고 하니 공양을 먹으라고 한다.
친절한 마음에 점심공양을 하고
나한전을 보고 되돌아가려는 데 스님이 차를 한잔하고 가라한다.
차를 마시는 데 주변에 '땅벌'이 윙윙거리며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근데
앗 따거!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온다.
나의 왼쪽 손목에 벌이 앉아 나를 쏘고 벌침을 뺄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
당했다.
손목이 잠깐 사이에 벌겋게 부어오른다.
스님이 하시는 말씀 일부러 봉침도 맞는다고 한다
아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금도 간질간질하는게 막 긁고 싶을 정도다.
영주 성혈사
영주 소수서원
여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소수서원의 인상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길 좌우에 펼쳐진 송림이다.
오래된 소나무에서 나오는 멋진 풍경에 다음에 다시 오게끔 한다.
영주 소수서원(사적 제55호)
영주 금성대군 신단(사적 제491호)
영풍 병산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85호)
영풍 병산리의 갈참나무는 나이가 6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3.8m, 둘레는 3.39m이다. 이 나무는 마을 뒤쪽 평탄한 곳에 충분한 성장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와 가지가 고루 발달하여 둥근 모양을 하고 수세가 건전한 편이다. 아래쪽 곁가지가 굵고 길게 뻗어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창원 황씨의 황전 선생이 조선 세종 8년(1426)에 ‘선무랑 통례원 봉례’의 벼슬을 할 때 심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이 나무는 동리의 서낭나무로 되어 있고,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갈참나무 아래에 모여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비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첫번째 여행의 시간
이 어느덧 저물어 간다.
이제 마지막으로 영주 부석사를 찾아간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있고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멋지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절
오늘은 시간이 저녁시간이라 삼각대를 배낭에 넣고 부석사를 찾아간다.
영주 부석사
비록 멋진 저녁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절에서 보는 저녁의 모습은 언제라도 좋다.
특히
나에게는 저녁을 맞는 절을 참 많이도 다닌 기억이 난다.
절에 있는 문화재를 찾아다니다 보니 절을 늦게 방문한 적이 많아서이다.
특히 이번 부석사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일은
무량수전에서 저녁예불을 드리고 왔다는 것이다.
조사당과 자인당을 보고 내려오니 어느덧 사방이 깜깜하고 저녁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히 펴져가고 있고 무량수전에는 스님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려고 준비준인것이 보인다.
나도 살며시 법당 한켠에서 조용히 저녁에불을 드린다.
둘째날
전국을 다니다 보면 오래된 마을이 관광지가 되는 것이 많이 보인다.
영주에도 그런 마을이 있어 찾아간다.
'무섬마을'
무섬마을에 대한 설명중 가장 인상깊은 곳이 있다.
다름아닌 아래의 사진에 나오는 다리로 무섬마을과 외지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다리
강물위에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나무위의 폭이 30cm정도 내외로 한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작은 폭의 다리이다.
백사장과 다리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맑은 강물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색다른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강물이 제법 많이 흘르고 있어 다리의 중간에는 물속에 잠겨있어 건너기에는 위험이 따르겠다.
바지를 걷어부치고 가까이 다가가 본다.
영주 무섬마을
청암정
어느 방송에선가 본적이 있는 정자이다.
특히 돌다리와 오래된 왕버들이 인상적인 정자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그대로를 살려 지은 정자로 정자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는 맛
세상만사 시름 모두 잊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이 깃들기를 바란다.
봉화 청암정(명승 제60호)
닭실마을이라.
마을입구에 있는 하천의 난간에도, 가로등에도 모두 닭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놓아 이곳이 닭실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아쉬운것은
닭실마을이라 특별한 것을 찾을 수 업고 울밑에 심은 봉선화나 백일홍 등 꽃들이 심어져 있어 오가는 관광객들을 맞는다는 것이다.
봉화 닭실마을
청간정과 닭실마을을 둘러보고 북지리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을 찾아간다.
몇 년전에 다녀간적이 있지만 그때는 겨울이라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앉아계실까 궁금하다.
그때는 보호각이 작았으나
이번에 찾아가니 보호각을 새로이 넓고 크게 지어져있고 주변도 깔끔히 정리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작은 요사채 같은 것만 있었는데
지금은 지림사라하여 새로이 불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지림사와 함께하니 앞으로고 관리가 잘 될 것 같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제201호)
다음으로
북쪽으로 길을 달려 축서사를 찾아간다.
축서사는
얼마전 서울 봉원사에서 열리는 영산재의 괘불을 보고 어떤분이 보물이라 하기에 검색을 하여 축서사에 괘불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비록 절을 찾아간다고하여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사찰이기에 보물로 지정될 정도의 괘불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이번 여행코스에 넣은 것이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두둥실 떠있고
절 주변의 오래된 소나무들이 가득하여 찾아가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비록 새로이 불사를 하였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사찰인것 같았다.
봉화 축서사
이제 오늘의 마지막을 찾아간다.
봉화 청량산에 자리한 청량사
봉화 청량산(명승 제23호)
청량사
칠보산의 유금사
유금사가 자리한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금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금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칠보산이란 이름도 이곳에 일곱가지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칠보산이라 불리어진다. 혹은 선덕왕의 일곱공주가 이곳에와 모두 출가하여 수도하다가 선화하여 신선이 되었으므로 칠보산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유금사의 관람포인트는
대웅전 뒤의 삼층석탑과 주변경관으로 삼층석탑은 보물 제67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의태자를 사모하다 끝내 죽고 만 장화부인의 안타까운 전설이 전하는 절이다.
영덕 유금사 삼층석탑(보물 제674호)
- 장화부인의 전설 -
유금사의 부속암자로 금선암이 있으니 신라 말 장화부인이 마의태자를 사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곳을 찾아와 출가한 곳이다.
장화부인은 사랑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축단을 설치하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마의태자가 왕위에 오를 것을 늘 축원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경주에서 연락이 오기를 신라가 망하고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유랑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장화부인은 축단 앞에서 울며 마의태자가 극락왕생하기를 몇 날 몇 일을 잠도 자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간절히 빌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금선암에서 같이 지내던 사람들은 그녀의 일을 애통히 여겨 정성껏 장사지내고 묘도 크게 만들어 주었으니 이 묘가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그녀를 위해 신령각을 지었으나 나중에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장육사로 가는 길
창수면소재지를 지나는 데 언덕위에 정자가 눈에 띈다.
차를 세우고 안내판을 읽어보니 나옹왕사와 관련된 곳으로 나옹왕사는 태고보우와 더물어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종조으로 지공, 무학과 더불어 삼대 화상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승이다. 왕사는 조선의 건국에 기여한 자초 무학대사의 스승이다.
이곳은 나왕왕사의 출가지이며 지금 내가 가는 목적지인 장육사를 창건하신 분이다.
반송정(나옹선사와 인연이 있는 곳)
영덕 장육사에는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3호)가 있어 찾아간다.
[절집여행] 구름이 깃드는 운서산이 감싸고 있는 영덕의 장륙사
운서산(雲棲山)
산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구름이 깃든다는 운서산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의 운서산 기슭에 자리한 장륙사
영덕에서 들어오다 창수면에서 반송정을 보며 나옹선사가 창건하였다하는 장륙사에 대한 기록을 보고 찾아온 절집
구름이 깃드는 운서산이 절을 감싸고 있는 장륙사는 불국사의 말사로 고려말인 공민왕 4년(1335) 영덕군 창수면 출신인 나옹헤근(1320~1376)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나옹스님 당대에는 매우 번창했던 고찰이나 이후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조선 세종 때에 산불이 나 전소되었고, 그 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폐찰되어 다시 중건하였으며 고종 광무 4년(1900)에 중수하는 등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람으로는 돌계단 길을 걸어올라가면 제일 먼저 홍원루를 만나게 된다. 좌측 언덕위에는 종각이 있고 홍원로 아래 통로를 통과하면 바로 앞에 대웅전과 우측에 삼층석탑을 맞이하게 된다. 대웅전 왼쪽 축대 위에 있는 관음전이 있으며 관음전에는 보물 제993호로 지정된 건칠관음보살좌상이 있다.
그리고 대웅전 오른쪽 산길을 올라가면 홍련암을 볼 수 있다.
영덕 장육사
영덕 화수루일곽(중요민속문화재 제260호)
영덕 강구항의 갈매기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답사지는 도천리 도천숲이다.
영덕 도천리 도천숲(천연기념물 제514호)
400년 전 마을이 생길 때 조성한 숲으로, 도천이라는 이름은 삼국시대이후 역로를 따라 내가 흐르는 마을이라 하여 길내 혹은 질내로 불리다 한자지명인 도천(道川)이 되었다.
한때는 숲의 규모가 산에서부터 하천을 따라 남쪽 국시당들까지 이어질 정도로 커서 이 ‘울타리’ 덕에 영덕 제일의 부자마을이었다고 하는데 화재와 경작 등으로 지금 규모로 줄어들게 되었다.
조성유래는 저 멀리 텃 골 입구의 사두혈(뱀머리) 형상이 마을을 위협하여 재앙이 끊이지 않았으나 이 마을 동주신(洞主神)이 때마침 큰 홍수가 나자 이미 지력이 다하여 덕성마을에는 필요없는 숲을 물에 떠내려가게 하여 구수리(도천리) 마을 앞에 옮겨 놓았다.
4,000여 평의 평지에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와 팽나무, 시무나무, 쉬나무, 말채나무 등 수백본이 자생하고 지표에는 맥문동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동신을 모시는 동신당이 있다.
마을숲의 조성원리와 유래가 잘 남아있으며, 숲 안에는 대마를 땅 속 구덩이에서 삶아 옷을 만들던 ‘삼굿’이 남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어 마을숲의 이용 등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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