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녕선생생가지 (李東寧先生生家址) /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
소재지 : 충남 천안시 목천면 동리79-2
독립운동가인 석오 이동영(1869∼1940)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건물의 전체 평면(平面)은 ㅁ자형(字形)의 안채와 조금 떨어져 있는 일자형(一字形)의 대문간채가 어울려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각주(角柱)를 사용한 납도리의 5량가구(五樑架構) 홑처마 팔작와가(瓦家)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칸씩의 방이 있는데, 안채의 동서(東西)로 3칸씩을 꺾어 달아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향(西向)하여 놓인 대문간채는 3량가구(三樑架構) 맞배집 5칸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칸씩의 방을 두었는데, 안채에서 보아 북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대문이 있다.
선생은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만주(滿洲) 용정촌(龍井村)으로 망명하였고,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安昌浩), 김구(金九) 선생 등과 비밀결사대(秘密決死隊)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였었다. 1910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이시영(李始榮), 이강영(李康榮)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였다.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를 수립, 의정원(議政院) 의장(議長)이 되었다가 후에 국무총리(國務總理) 국무위원(國務委員) 주석(主席)을 겸임하였다. 1928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만들어 이사장(理事長)이 되었으나 1940년 중국의 사천성(四川省)에서 병사(病死)하였고, 묘소(墓所)는 서울의 효창공원(孝昌公園)에 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大韓民國建國功勞勳章) 복장(複章)이 추서(追敍)되었다.
독립운동가 동오 이동녕선생 생가지를 찾아가는 길
하늘은 맑고
따뜻한 봄날은 여기에도 비추고 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생가지 뒤의 야산에 어떤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떤 새일까?
안내판을 보니 '왜가리'라고 한다.
왜가리는 온몸이 회색이고 다리가 기며 등은 회색, 배와 머리는 흰색인데, 검은색 줄이 눈에서 머리 뒤까지 이어져 긴 댕기를 이룬다.
부리와 다리는 계절에 따라 노란색이나 분홍색을 띤다.
서식지로는 못, 습지, 논, 개울, 하천, 하구 등으로 한국, 일본, 중국(북동부), 몽골, 인도차이나, 미안마 등에서 분포하고 있는 새이다.
산류천석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 다는 뜻으로,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9년 12월에 설치한 조형물이다.
석오 이동녕 선생
집 옆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왜가리들의 분비물로 인해 고사하였다고 한다.
새 똥은 강한 산성이 있어 나무뿐만아니라 자동차에 녹을 쓸게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생가 내부
석오 이동녕 기념관
대형 태극기 앞에 선생의 흉상이 있다.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쓰다 병으로 돌아가셔서 독립은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는 분이다.
서전서숙
국내에서의 민족운동이 여의치 않자 국외로 나아가 동포들에게 교육 구국의 의지와 신념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선생은 길림성 용정촌에 서전서숙을 건립하였다.
'서전'이란 말은 용정 일대의 넓고 쓸모 있는 평야를 서전대야라고 부른데서 유래한 말이다.
서전서숙에서 이동녕은 수신과 한국사, 한문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간도에 있어서 최초의 민족주의 사립학교인 서전서숙은 다음에 10월경 일제의 탄압으로 1년 남짓밖에 유지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서전서숙은 교육항쟁을 통해 독립정신을 제2세 국민에게 불어 넣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
왜가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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