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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여행]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인 혼을 다바쳐 불을 지펴낸 최명희 작가의 '혼불'

들꽃(野花) 2013. 11. 2. 05:30

[남원여행]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인 혼을 다바쳐 불을 지펴낸 최명희 작가의 '혼불'

 

 

최명희의 '혼불'

작가는 '혼불'이란 우리 몸안에 있는 불덩어리라고 했다.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 최명희 작가는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이라고 했다.

혼을 다바쳐 불을 지펴낸 글, 혼불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22번지의 혼불문학관

혼불문학관에서 최명희 작가를 만나본다.

혼불문학관은 소설 '혼불'을 배경으로 한 상징성 있는 문학기행 코스를 부여해 문학과 관광을 연계한 특색있는 테마 도시개발을 목적으로 2001년 첫삽을 떠서 2004년에 부지 17,650㎡, 혼불문학관, 관리 및 교육지원관 등을 조성하였다.

 

혼불문학관 전시실에는

혼례식 장면, 강모 강실 소꿉놀이, 효원의 흡월, 청암부인 장례식 장면 등 디오라마 10점이 전시되어 있고, 매직비젼과 작가 최명희의 집필실 재현, 체험시설로 인월댁 베짜기 등을 만날 수 있다.

 

혼불은 최명희 작가가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 동안 혼신을 바친 대하소설로 20세기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이다.

혼불은 일제강점기 때 사매면 매안마을의 양반가를 지키려는 3대의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숨결과 손길, 염원과 애증을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생생하게 복원하여 형상화 한 작품이다.

 

 

 

작가 최명희님의 집필

 

 

혼불문학관

 

 

 

혼불을 쓴 이유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

[홈페이지 내용]

 

 

 

 

전시실의 성격은 작가 최명희 선생이 살아 생전 아끼며 사용했던 만년필, 커피잔, 혼불 원고 등을 비롯한 소장품류를 복제하여 전시하고 매안 이씨 가문 종부 3대의 삶을 통해 나타난 당시의 사회적 기품과 평민, 천민들의 민족혼 회복을 위한 노력 등을 디오라마로 전시하는 전시실이다.

이를 통해 순결한 모국어와 세시풍속, 관혼상제 등 전통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하였다.

 

 

 

 

 

 

 

 

 

 

 

새암바위

최명희님이 온갖 정성으로 쓴 「혼불」이 새암을 이뤄 위로와 해원의 바다가 되기를 바라는 최명희님의 뜻을 담아 이 바위를 새암바위라 한다.

최명희 어록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는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어쩌면 장승은 제 온몸을 붓대로 세우고, 생애를 다하여, 땅속으로 땅 속으로,
한 모금 새암을 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마을, 그 먼 바다에 이르기까지…….

 

 

 

 

 

 

 

최명희 어록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지금 이토록 한 시대와 한 가문과
거기 거멍굴 사람들의 쓰라린 혼불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간절하게 타오르고 있으나
나는 아마도 그 불길이 소진하여 사윌 때가지
추일하게 쓰는 심부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 못한 이야기를
뒤쫓느라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 일을 위하여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좋은,
단 한 사람 만이라도 오래오래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 눈길이 바로 나의 울타리인 것을
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혼불의 줄거리

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삼대 종부(宗婦)가 커다란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이씨 집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그리고 허약하고 무책임하기가 이를 데 없는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리고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그네였다. 이들이 전통사회의 양반가로서 부덕을 지켜내는 보루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엔 치열하게 생을 부지하는 하층민의 '거멍굴 사람들'이 있다. 특히 양반계층을 향해 서슴없이 대거리하는 옹골네와 춘복이, 당골네인 백단이가 강력한 자기장으로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런 갈등의 그물은 우선 효원과 혼례를 치른 강모와 사촌 여동생인 강실이 사이의 근친상간에서 시작된다 . 애틋하게 바라만 보아오던 두 사람이 마침내 건너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어 섬으로서 제각기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린다. 우유부단한 강모는 그를 따라나선 술집 기생 오유끼와 함께 머나먼 만주 봉천땅으로 도피를 해버리고, 강실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홀로 삭이며 닥쳐오는 암운 앞에 무방비로 놓인다.

한편 상피에 대한 소문이 거멍굴로 전해지자 자기 자식만은 자신과 같은 운명에 놓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 춘복이가 양반댁 강실아씨를 탐내기 시작하고, 춘복이와 몰래 동거를 하고 있던 과수댁 옹구네도 양반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춘복이를 잃고 싶지 않은 집착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 음모란 상피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서 강실이를 내치게끔 하고 그때를 노려 춘복이가 강실이를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차츰 은밀히 옹구네가 퍼뜨린 소문은 그물처럼 강실이와 효원을 죄어들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춘복이는 강실이를 겁간해 임신을 시키게 된다 . 이후 이런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효원은 애증이 교차된 마음으로 강실이를 피접시키려고 하나 그만 옹구네가 중간에서 강실이를 납치함으로서 상황은 예기치 않은 국면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이씨 문중의 노비인 침모 우례에게 상전의 피가 흐르는 아들 봉출이가 번득이는 비수처럼 성장해 가고 ,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을 했다가 덕석말이를 당한 당골네의 원한도 무서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계급적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강모의 사촌형들, 강호와 강태도 강력한 전운을 드리우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이런 갈등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짜여서 이제 생생하게 날뛰는 인간군상들을 막 건져 올릴 찰나에 허망하게도 소설은 끝이 아닌 끝이 나버렸다.

이야기 사이사이 마다 , 아니 이야기보다도 더 정성스럽게 저자는 당시 시대의 풍속사를 깨알같이 묘사하고 있다. 첫 장면인 혼례의식을 비롯해서 연(鳶) 이야기며 청암부인의 장례절차 그리고 유자광이나 조광조, '새로 쓰는 백제사'의 이야기도 돋보인다. 여기에 조왕신의 습속이나 복식에 대한 묘사, 윷점이야기 같은 내방의 섬세한 면면들도 감탄 속에 눈길을 끌고, 봉천땅의 구체적인 지리묘사라든지 사천왕의 긴 이야기도 사물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대목이다 .

도대체 이런 기술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부를 필요로 했을까 ? 독자들은 읽는 내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성이야말로 바로 '혼불'을 만들어낸 근원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혼불문학관 홈페이지 내용 옮겨옴>>>

 

 

 

청호저수지는 비산비야 사질토로 물이 부족하여 농사짓기가 어려워 만든 저수지이다.
마을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맥을 가두기 위해 큰 못을 파고, 그 갇힌 기운이 찰랑찰랑 넘치게 한다면, 백대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 만한 곳이다 하여 청암부인은 실농한 셈 치고 2년여에 걸쳐 만들었다.
저수지를 파다가 동서로 열다섯 자 네 치, 남북으로 열넉 자 두 치에 이르는, 보면 볼수록 엎어놓은 조갑지 형상인 실로 거창한 조개바위가 나왔다. 사람들은 이 바위가 이씨 문중과 종가는 물론이거니와 온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
「혼불」 자료
“전에, 옛적에 한 고명허신 어른이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셨더란다. 그 어른이 하루는 이 고을 매안에 머무시면서 시방산세(十方山勢)를 두루 짚어 살피신 연후에, 과시 낙토로서 경우진 것이로다. 하고 감탄을 하셨는데······.”
청암부인은 중간에 잠시 말을 멈추고 이기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만 서북으로 비껴 기맥이 새어 흐를 염려가 놓였으니, 마을 서북 쪽으로 흘러내리는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 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 만한 곳이다. 하고 이르셨더란다.”
「혼불」 1권 158쪽

 

 

 

 

 

찾아가는 곳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22번지

전화번호 : 063-620-6788

홈페이지 : http://www.honb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