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꽃의 문화재답사/문화재자료

[광명여행]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오리영우, 이원익선생영정, 오리정승, 충현박물관

들꽃(野花) 2018. 5. 20. 05:30

[광명여행]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오리영우, 이원익선생영정, 오리정승, 충현박물관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

오리 이원익 영우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이원익선생영정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인조(재위 1623∼1649)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 선생의 종가이다.

이원익(1547~1634) 선생은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문신으로 자는 공려, 호는 오리이다.

본관은 전주로 태종의 12번째 아들인 익령군의 4대손이다.

선생은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며,

'오리정승'으로 널리 알려졌다.

 

인조 8년(1630)에 2칸 초가인 선생의 집에 비가 새자 왕이 새 집을 하사하였다.

효종 9년(1658)에는 사당을 짓고,

‘충현서원’이란 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후에 서원은 철거되었다.

옛 집터에 1916년 사랑채인 관감당을 새로 짓고,

이듬해에는 안채를 들이고, 1940년에는 문간채를 새로 지었다고 한다.

안채와 문간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는 그 옆에 따로 떨어져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13칸 반 규모에 ㄱ자형 구조를 이루어 건넌방 2칸·대청마루 3칸·안방 2칸을 배치하였고,

안방 앞쪽에서 꺾여 부엌 3칸·온돌방 1칸이 놓여 있다.

문간채는 13칸 규모로,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부엌·광이 있다.

현대식으로 고친 부분도 있으나, 20세기에 세운 경기지역 살림집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

 

 

 

충현박물관

이 일대는 선생이 말년에 여생을 보내시던 곳으로

인조께서 하사하신 관감당,

사당인 오리영우,

성생이 배향되었던 충현서원지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거문고를 타시던 탄금암과 400년 수령의 측백나무,

최근에 복원된 풍욕대와 삼상대와 같은 정자가 남아있다.

 

 

 

 

 

 

 

종택

 

 

 

 

 

 

 

 

 

 

 

 

 

 

 

 

 

 

 

 

탄금암

선생이 거문고를 연주하던 바위로 탄금암은 선생이 청백리로 근검한 생활도

실천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정통하였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원익이 벼슬에서 은퇴하고 이곳 초가에 살 때

인조가 승지를 보내어 그의 생활을 알아본 즉 비바람이 새는 퇴락한 집에서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므로

경기감사로 하여금 정당(正堂)을 짓게 하고 하사하였다 한다.

관감(觀感)이란

옥호는 그가 국가에 끼친 큰 공훈과 청백리로 임관한 자세는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 하여

"모든 신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것"

이라는 뜻이라 전한다.

관감당은 병자호란 때에 크게 훼손되었으나

후손들이 중건하고 관감당이란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현재 이 건물은 목조 기와집으로 팔작지붕에 회벽을 했으며,

내부는 쪽마루이고 기단부는 장대석과 시멘트로 포장하였다.

그리고 건물 앞에는 이원익이 생존시에 각자했다는 탄금암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다.

 

1916년에 옛 집터에 중건되고

이듬해에는 종택 안채가 건립되었으며 1940년경에는 문간채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오리 이원익 영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찾아가기]

 

 

영우(影宇)란 영정을 모신 건물을 뜻한다.

선조 13년(1580) 이전의 이원익의 영정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원익의 집터 위에 숙종 19년(1693)에 건립된 사당이다.

'오리영우'라는 현판은 숙종이 내린 것이다.

 


규모는 앞면 1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정사각형인데 앞면에 퇴칸을 두어 출입구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옆면이 2칸이 되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계 양식으로 19세기 말의 수법을 보이고 있다.

옆면에 만든 방화벽, 건축재료의 단면 역시 조선 후기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으나

기단과 기둥을 받친 초석은 17세기 것으로 추정한다

 

 

 

 

 

이원익선생영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0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찾아가기]

 

그림은 머리에 검은 사모를 쓰고, 관복을 차려 입고 호랑이 가죽이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상으로,

가로 70㎝, 세로 150㎝의 크기이다.

초상화를 그린 양식이 언뜻 공신에 오른 것을 기념하는 공신도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관복의 가슴에 있는 학무늬의 흉배로 보아 당하관 재직시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오른손에 부채를 쥔 채 왼손에 대를 잡고 있는데 손의 표현이 미숙하다.

얼굴에는 음영효과를 주었으며, 수염·눈썹·뺨 등은 묵으로 엷게 칠한 후 묵선으로 다시 덧칠하였다.

눈은 금가루에 아교를 개어 칠한 것으로 보일 만큼 눈동자 주위에 금니가 남아있다.

선생이 공신의 서열을 받기 전인 선조 13년(1580)에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대부분이 왼쪽으로 얼굴을 돌린데 비해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풍욕대

'바람에 목욕한다'는 시적인 이름을 가진 정자이다.

이곳은 여름철 구름산 너머 서해에 불어오는 해풍으로 매우 시원한 곳이다.

 

 

무상대

 

 

찾아가는 곳

충현박물관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347번길 5-6(소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