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14

[문화재답사/부여]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 보물 제185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보물 제185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66 무량사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

[문화재답사/부여]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 보물 제1565호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扶餘 無量寺 塑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 보물 제1565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무량사 (만수리)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중층전각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7세기 대규모 사찰에서 널리 조..

[문화재답사/부여] 부여 무량사 극락전 - 보물 제356호

부여 무량사 극락전 (夫餘 無量寺 極樂殿) / 보물 제356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무량사 (만수리)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

[부여여행] 김시습이 찾고자한 극락세계가 있는 만수산의 무량사

부여의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에 선택하고, 입적한 곳 만수산의 무량사. 그는 왜 이곳 무량사를 선택하였을까. 이곳에서 김시습의 흔적은 김시습초상과 부도만이 남아있지만 그가 말년을 선택한 이곳은 어떤 곳일까요? 당시 김시습이 생을 마감하기 위한 장소로 무량사를 선택할 이유에 대해 ..

충청남도여행 2010.05.12

[문화재답사/부여] 부여무량사명부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9호

부여무량사명부전 (扶餘無量寺冥府殿)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9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 부여 무량사 명부전은 극락전 전면의 동편에 있는 건물로서 지장보살을 모시고 명부의 시왕상(十王像)을 모셨으며 일명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부른다. 건물기단은 자연석을 ..

[문화재답사/부여] 무량사김시습부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

무량사김시습부도 (無量寺金時習浮屠)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산125-1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분으로, 21세 때에 수양대군(후의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불교에 입문하여 만년을 무량사에..

[문화재답사/부여] 부여무량사삼전패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부여무량사삼전패 (扶餘無量寺三殿牌)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 부여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는 나무로 만든 전패 3기로, 규모는 높이 150㎝, 폭 53.5㎝이다. 1654년에 만들어진 삼전패는 머리, 몸체, 대좌의 삼단(三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몸체부..

[문화재답사/부여] 부여무량사지장보살및시왕상일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부여무량사지장보살및시왕상일괄 (扶餘無量寺地藏菩薩및十王像一括)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 부여 무량사 명부전에는 중앙 불단 위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중심으로 그 측면에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의 삼존상이 있고 ..

[문화재답사/부여] 무량사미륵불괘불탱 - 보물 제1265호

무량사미륵불괘불탱 (無量寺彌勒佛掛佛幀) / 보물 제1265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무량사 (만수리) 미래불인 미륵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 여덟구씩의 화불을 그린 괘불인데,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예배를 드리는 대상으로 법당 앞 뜰에 걸어놓..

[문화재답사/부여] 무량사동종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2호

무량사동종 (無量寺銅鐘)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2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 주석과 청동의 합금의 비율이 매우 잘게 배합된 재질로서 균형잡힌 종신과 더불어 풍부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1636년에 조성된 범종으로서 종에 새겨진 여러 문양들과 배치는 16세기 전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