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갑사는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전체 사진을 담은 적이 없어 다시 한번 찾았다.
인천에 있는 건설기술교육원에서 건설기술자 교육중 하루를 쉴 수 있다기에 나 홀로 갑사를 다녀오기로 하여 찾은 것이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고상한 취미일 것 같지만, 오늘 일정이 바쁜관계로 한가로이 자연을 만끽할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갑사에서 신원사로 다시 청양의 정선서정리구층석탑과 청양석조삼존입상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계룡산에 위치하고 있는 갑사는 유명한 사찰로,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수리해서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뒤 매표소를 가는 길이다. 오른쪽에는 상가지역이 있다.
계룡산 국립공원안내도
계룡산갑사의 일주문
박희선의 시비로 지비(紙碑 )를 담고 있다.
계룡산의 갑사는 역시 이길이 최고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길옆 좌우에 우렁차게 서 있는 모습이 저절로 시원하게 느껴진다.
사천왕문
사천왕문에서 길을 당간지주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다.
보물 제256호 갑사철당간및지주가 보인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한적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보물 제257호 갑사부도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으며,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 등은 고려시대 부도탑들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공우탑으로 은혜를 갚은 소의 전설이 전해지는 탑이다.
보물 제478호 갑사동종으로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매달 목적으로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갑사의 강당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각으로 가는 길
삼성각은 칠성·산신·독성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건물 이름이 삼성각 인 이유는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한다.
칠성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수명장생을 주관하는 별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며, 독성은 혼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각각의 건물을 따로 지어 삼성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삼성각 안에 같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범종루
표충원은 영조 14년(1738)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건물 안에는 서산대사 휴정·사명대사 유정·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팔상전으로 가는 길
팔상전에는 석가모니불과 팔상탱화, 그리고 신중탱화를 모시고 있다. 팔상탱화는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며, 신중탱화는 불교의 호법신을 묘사한 그림으로 호법신은 대개 우리나라 전통의 신들이다.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어가는 길목
용문폭포
천진보탑은 계룡산 내에 봉우리처럼 우뚝 솟아있는 자연바위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탑이다. 탑이란 부처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을 일컫는 것으로, 이 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인도의 아육왕은 구시나가라국에 있는 사리탑에서 많은 양의 사리를 발견하여 이를 시방세계(十方世界:열곳의 방향에 있는 중생의 세계로, 동·서·남·북·동북·동남·서남·서북·상(上)·하(下)에 있는 무한한 세계를 가리킴)에 나누어 주었다. 그 때 4천왕(四天王:불교의 법을 지키는 무리로, 동·서·남·북 네곳을 지키고 있음) 가운데 북쪽을 담당하던 비사문천왕을 이곳 계룡산에 보내어 이 바위안에 담아 두도록 하였고, 뒷날 아도화상이 이를 발견하여 ‘천진보탑(天眞寶塔)’이라 이름붙여 놓았다.
갑사사적비로 수리중
부도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