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여행

임자도의 이모저모

들꽃(野花) 2009. 8. 17. 22:06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임자도를 한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원래 새벽형 인간이라 홀로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새벽잠이 없어 모임이나 그런데서 같이 간 일행들은 싫어함)

 

대문이 시원하고 뭔가 특별해야 한다기에 대광해수욕장의 풍차를 대문으로 삼는다.

새벽에 찍은 사진들은 특별히 눈에 드는게 없다. 

 

대광해수욕장의 맨 위쪽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의 모습

 

멋진 일출을 기대했으나 구름이 있어 만족스럽지 못하다.

 

대광해수욕장의 맨 위쪽.

해수욕장의 길이가 12k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해수욕장이라 한다. 이곳을 오기 위해 차로 운전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답이 나온다. 한참 운전했으니 말이다.

 

사진으로 보이진 않으나 저 멀리 섬 왼쪽에 해수욕장이 활성화 되어있는 곳이다.

 

 

다음날 새벽에 집사람과 처제와 함께 대광해수욕장 끝을 다시 한번 다녀왔다.

 

어제 진리선착장에서 대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이정표가 생각나 찾아간 곳이 용난굴이다.

(원래 시력이 좋다보니 아직도 양쪽다 1.5 이상이니 관심있는 것은 눈에 더 잘 띈다.)

 

 이 곳은 어머리해수욕장이란 곳으로 썰렁하며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저 멀리 용난굴의 모습만 보인다.

가운데 보면 약간 들어간 곳이 보이는데 저곳이 용난굴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땅에서 청자를 싣고 황해를 건너온 신안 보물선이 임자도 앞바다까지 와 침몰되었습니다.

선원들은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여 눈앞에 보이는 임자도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쳤습니다. 그러나 당시 임자도는 사람이 살지않는 무인도였습니다.

  그들은 무인도 바닷가 바위에 걸터 않아 자신들의 배가 침몰한 바다를 바라보며 멀고 먼 중국땅에 두고온 가족과 연인들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바위 속에는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무기는 누군가가 자신이 갇혀있는 바위에 눈물을 흘려야 용이되어 승천할 수 있는 운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월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한명 한명 죽어갔습니다.

  마침내 최후의 한사람으로 선장이 남았습니다.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안 그는 바닷가 바위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간절히 소리쳤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다 뚝뚝 떨어졌습니다.

  '나를 고향에 데려다 주오,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곁에 데려다 주오......'

  그의 눈물이 바위에 떨어졌습니다.

  바위가 눈물을 빨아들이자 큰 소리를 내며 부서지며 그 속에서 한마리의 용이 뛰쳐 나왔습니다. 용이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선원을 왼손에, 죽은 선원들의 영혼을 오른손에 손아귀로 잡고 하늘로 날아올라 임자도를 가로질러 서쪽 황해바다로 날아갔습니다. 살아서 중국으로 간 보물선의 선장은 나중 높은 사람이 되었다 합니다.

 

  임자도 사람들은 용이 나온 굴을 '용난굴'이라 하고 신안 보물섬 사람들이 가족과 고향을 그리던 용난굴 옆에 서 있는 바위를 '망향석'이라 부릅니다.

  용난굴과 망향석에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조희룡기념비

 

 

 

 

 

다음날 찾은 하우리 선착장의 모습들이다.

이때는 집사람과 처제가 동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