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고산 윤선도는 42세때 봉림대군(후에 효종)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는데, 효종은 즉위 후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 주었다. 효종이 죽자 1668년 수원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온 것이 현 고택의 사랑채로, 원래는 이 사랑채의 이름이 '녹우당'이나 지금은 해남 윤씨 종가 전체를 통틀어 그렇게 부른다. 녹우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 하며 비가 내리는 듯 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집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녹우단 뒤쪽의 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될 정도로 녹음이 우거져있다. 해남윤씨의 선조가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고 해서 후손들이 정성으로 숲을 가꾸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물전시관에는 국보 제240호 윤두서자화상, 보물 제481호 해남윤씨가전고화첩(윤씨가보, 가전보회, 동국여지도, 일본여도), 보물 제482호 윤고산수적 및 관계문선(금쇄동집고, 금쇄동기, 산중신곡, 은사첩, 예조입안), 보물 제483호 지정14년노비문서 등 많은 국가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제일 먼저 맞아주는 것은 500여년 정도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유물전시관 입구
사적 167호로 지정된 해남윤씨녹우단으로 들어가는 길로
녹우단과 녹우당을 구분한다면 녹우당은 윤선도가 기거했던 사랑채를 말하며, 이곳 유적지 전체를 표현할 때 녹우단이라 한다.
녹우당과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아름답다.
담장이 조금 허물어져 있는데 아직 보수가 되지 않고 있다.
고산윤선도 사당
어초은사당은
어초은 윤효정의 호로 이곳 녹우당의 역사는 윤효정이 연동에 터를 잡으면서 시작된다.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인 윤효정은 해남윤씨를 명문집안으로 성장시키는 기틀을 마련한다. 때문에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시조가 되고 있다.
윤효정(1476년 성종7 - 1543년 중종38)은 해남을 학문의 길로 이끌었다는 금남 최부의 밑에서 공부하였으며, 1501년 26세에 성균관생원에 합격하는데, 벼슬에 미련을 버리고 오직 농업과 자손교육에 힘쓰며 살아간다. 고기나 잡고 땔나무를 하면서 살겠다하여 어초은(漁樵隱)이란 호를 정하였다.
윤효정은 학문이 뛰어났으며 세 아들을 모두 문과에 급제시키는 등 녹우당 해남윤씨가를 명문사족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인물로는 큰아들인 윤구(尹衢)는 1516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부교리를 지내다가 기묘사화 때 영암에 유배되어 이후 풀려났으며 기묘명현의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으며, 송강 정철과 함께 조선시대 우리문학의 쌍벽으로 국문학의 비조라 일컬어지는 단가 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를 탄생시킨다. 이후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는 조선후기 삼재의 하나인 문인화가를 배출할 정도의 명문사족으로 자리잡았다.
녹우당은 어초은(윤효정)이 자손들에게 바람직한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성리학의 실천적 사고를 자연환경에 담아 이를 전통풍수 사상에 맞추어 백련지를 꾸미고 조성한 원림이라 할 수 있다. 녹우당은 어초은의 이러한 사상이 가장 잘 반영된 곳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가장 잘 계승, 발전시킨 것은 물론 고산 윤선도다. 우리나라 원림은 유교와 노장사상이 짙게 반영된 자연 순응형 정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녹우당 원림 역시 순수한 자연관과 성리학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조성한 자연순응형 원림이라 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된 비자나무숲으로 들어가는 길로 여행블로거기자단의 일정상 찾아가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추원당으로 가는 길
울창한 원림이 가득하여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확 날릴 수 있어 마음이 상쾌하였다.
추원당의 모습
추원당은 이 마을에 처음 자리를 잡은 어초은윤효정의 제각으로 1935년 세로 지었으며, 시향은 음력 11월 15일 어초은사당에서 지내고, 이곳 추원당에서는 제관과 참배하는 후손들이 숙식을 하며 문중회를 하는 곳이다.
추원이란 먼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여 정중히 공경을 다함을 뜻하는 말이다.
꽃무릇이 활짝 피어 방문하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고산선생시비와 시비기
고산윤선도선생시비로 어부사시사의 일부를 조각하여 놓았다.
어부사시사는 1651년 효종 2년(고산 65세)에 완도 보길도에서 지은 작품이며 총 40수로 이루어졌다.(봄:10수, 여름:10수, 가을:10수, 겨울:10수)
시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춘(春詞)-4 수로
우는 것이 뻐꾹샌가 푸른것이 버들숲가 / 배 저어라 배 저어라 /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들락 / 찌거덩 찌거덩 어야치 / 맑은 깊은 연못에 온갖 고기 뛰노도다
하(夏詞)-7 수로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까웠다 / 배 세워라 배 세워라 / 바위 위에 굽은 길이 솔 아래 비껴 있다 /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 푸른나무 숲 꼬꼬리 소리 곳곳에 들리누나
추(秋詞)-2 수로
강촌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 닻 들어라 닻 들어라 / 넓고 맑은 물에 마음껏 즐겨보자 / 찌거덩 찌거얻 어야차 / 인간세상 돌아보니 멀도록 더욱 좋다
동(冬詞)-8 수로
물가에 외롭게 선 솔 홀로 어이 씩씩한고 / 배 매어라 배 매어라 / 험한 구름 원망 마라 인간세상 가리운다 /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 파도 소리 싫어 마라 속세소리 막는도다
유물전시관
보물 제482호 산중신곡(오른쪽 아래)
보물 제481호 윤씨가보
국보 제240호 윤두서자화상
녹우당의 자연 원림을 체험할 수 있도록 안내가 잘 되어있다. 시간이 허락되면 아니 반드시 권하고 싶은 곳이다. 물론 이몸은 시간상 들려보지 못하였지만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아 녹우당의 원림을 걷고 싶은 것으로 이곳의 여행을 마쳐야겠다.
'전라남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나무 향기따라 찾아온 담양의 죽녹원 (0) | 2010.03.16 |
---|---|
곡성의 두가교에서 만난 겨울의 섬진강 (0) | 2010.03.02 |
[해남여행] 해남의 하늘길 두륜산케이블카 (0) | 2009.10.28 |
[진도여행] 진도대교의 야경 (0) | 2009.10.27 |
[진도여행] 진도 벽파진의 이충무공전첩비 (0) | 2009.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