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강 하류 쪽에는 행주대교 조금 못미쳐 좌측에 나즈마한 산이 있으니 그곳이 개화산이다.
개화산은 조선 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던 곳으로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인 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은 물론 조산(祖山)인 관악산을 바라다 볼 수 있는 명소이다. 개화산 중턱에 한강이 한눈이 바라보이는 곳에 조그마한 사찰이 있으니 약사사라 한다.
약사사의 창건은 삼한 시대 혹은 신라 시대로 전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창건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고려 시대의 유물인 석불과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도 법등이 이어져 왔음을 짐작해 볼 따름이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는 별다른 역사를 찾아 볼 수 없다가 1737년(영조 13)에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에 의해 크게 중수된 후 송씨 가문의 원찰이 되었다.
송인명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어려서 아주 가난했는데 개화사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였고, 1736년에 좌의정에 오르자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절을 크게 고쳐지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영조 때 최고의 시인이었던 이병연(李秉淵)이 송인명에게 보낸 시를 통해 더욱 잘 알 수 있다.
『사천시초(槎川詩抄)』
봄이 오면 행연(杏淵) 배에 오르지 마오
손님이 오면 어찌 꼭 소악루(小嶽樓)만 오르려 하나
책을 서너 번 다 읽은 곳이 있다면
개화사(開花寺)에서 등유(燈油)를 써야지.
또한 이병연과 교류하고 있던 겸재 정선은 이 시를 보고 ‘개화사’라는 그림으로 절경을 남겼던 것이다.
이후 개화사는 약수암(藥水庵), 약수사(藥水寺), 약사사(藥師寺) 등으로 절의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과 매우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은 영험이 있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하여 향화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화산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아마 인근 지역 사람들의 산책코스로 제격인 것 같다. 산의 맑은 공기와 한강을 지척에서 볼 수 있어 더더욱 그런것 같다.
약사사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제39호)
약사사 석불입상(시도유형문화재 제40호)
절 마당까지 차가 들어와 있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절 입구에 주차공간이 충분한데도 굳이 차를 마당에 주차시키는 그네들의 속내를 모르겠다. 절이란 원래 오가는 이들의 관심이 없다지만 그래도 절까지 자동차는 글쎄!!!
약사사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저 멀리 북한산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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