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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여행] 김시습이 찾고자한 극락세계가 있는 만수산의 무량사

들꽃(野花) 2010. 5. 12. 14:08

부여의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에 선택하고, 입적한 곳 만수산의 무량사.

그는 왜 이곳 무량사를 선택하였을까.

 

이곳에서 김시습의 흔적은 김시습초상과 부도만이 남아있지만 그가 말년을 선택한 이곳은 어떤 곳일까요?

당시 김시습이 생을 마감하기 위한 장소로 무량사를 선택할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였답니다. “험하고 외진 곳이기 때문에 백 년이 지나도 나를 귀찮게 할 관리 하나 없을 것이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고 세상을 비관하여 책을 불사르고 스님이 되어 유랑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무량사에 들어와 59세 때 입적하였습니다.

 

무량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풍경입니다.  

 

 

이제 들어갑니다.

속세를 떠나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겠습니다.

 

만수산 무량사라고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무량사의 연혁을 살펴보아야겠죠.

무량사는 신라의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다고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이곳 무량사 하면 김시습을 떠올리게 하는 곳입니다.

 

 

저 다리를 건너면 불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5월의 신록이 한껏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죠. 초록이 빛나는 계절에 이렇게 조용한 사찰을 찾아 심신을 달래줄 수 있다니 여행은 참 멋진것이죠.

 

계곡에 물도 흐르고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고

 

천왕문으로 가는 길목의 오른쪽 숲속이랍니다.

뭔가 느낌이 없습니까?

저는 이런곳만 보면 세상사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저속에 푹빠져보고 싶습니다.

하나 안돼겠죠.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천왕문이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로 천왕문을 찍고 있네요.

천왕문이 뭐더라.

동방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북방를 다스리는 다문천왕 맞나요.

저는 볼때마다 헤갈리고 외워지지가 않는답니다.

 

어라!

왠 당간지주가 저기에 서 있을까요. 절의 행사가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놓는 지주인데 아마 제자리가 아닌것 같아요.

천왕문 들어가기 전 오른쪽 숲속에 있는 모습을 보니 신록의 계절에 봐서 그런지 위치가 괜찮아 보이죠.

 

천왕문에 들어가기 전 왼쪽의 담장 너머의 절의 모습이랍니다.

담장 너머로 보는 안쪽의 세상

초파일의 연등, 전각과 푸른하늘이 절의 안쪽 세상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많드시죠. 

 

천왕문으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눈에 펼쳐진 절의 모습

푸르름의 신록과 연등,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모습, 어떻습니까?

잘 오셨죠. 야단법석을 하고 있나보죠.

 

무량사 주지스님께서 직접 많은 신도들에게 좋은 말씀을 하고 계시네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량사석등, 오층석탑, 극락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포즈를 멋지게 취하고 있네요.

여기서 공부 조금만 하고 갈까요.

왜 극락전일까요. 어떤 분을 모시고 있어서 그렇게 부르나요.

중앙에 아미타여래불과 좌측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을 봉안하면 극락전이라고 한다네요. 공부가 되셨나요.

 

무량사 극락전 / 보물 제356호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무량사오층석탑 /  보물 제185호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무량사석등 / 보물 제233호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받침은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며, 꼭대기에는 자그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래·위받침돌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고,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부여무량사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 보물 제1565호

 

  무량사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삼존상으로 아미타·관음·대세지라는 분명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미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과 163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조각사 연구는 물론 조각 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불신의 전체적인 모습이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감이 있으나 양대 전란 이후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당시 불교계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전반기 대형불상에서 삼신 또는 삼세불상이 결합된 삼존형식이 대부분인 가운데, 극락전의 주존으로 아미타·관음·대세지보살이 결합한 삼존도상의 드문 예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김시습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전각입니다. 관광객이 안내문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네요. 

 

김시습초상 / 보물 제1497호

  초상은 좌안7분면의 복부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 패랭이를 쓰고 담홍색 포를 입고 있으며 공수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과 의복은 옅은 살색과 그보다 약간 짙은 색상의 미묘하고 절제된 조화로 묘사되고 있다.

 

  초상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초상화라는 인물사적 가치 위에 조선시대 야복초상화의 가작이란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아래의 초상화는 아마도 복제품이겠죠. 보물을 저렇게 빈 전각에 모셔 놓을일이 없을테니까요.)

 

 

 

 

이제 절을 나와 무량사의 옛길을 걸어가보겠습니다.

무너진 돌탑과 작은 돌탑들이 여기저기에 있네요.

 

이길이 무량사로 들어가는 옛길이랍니다.

지금은 아래쪽에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서 관광객들이 이 길을 이용하지 않는답니다.

이 길로 가면 김시습의 부도가 나오죠.

한적한 오솔길

이런 길을 한없이 걷고 싶네요.

걷고 걸으며 사색에 빠져보고 싶은데 삶의 여정이 그리 허락치 않고 있답니다.

 

맨앞의 팔각부도가 김시습의 부도입니다.

비석에 오세김시습지묘라고 쓰여있네요. 왜 그렇게 쓰여 있을까요.

 

 

 

 

 

이밖에도 문화재로는 보물 제1265호 무량사미륵불괘불탱, 시도유형문화재 제162호 무량사동종, 시도유형문화재 제177호 무량사삼전패 등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문화재도 관람하고 왜 이곳에 김시습이 말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