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여행

[경주문화유산탐방] 별자리를 관측하였다는 첨성대

들꽃(野花) 2010. 11. 28. 06:00

문화유산탐방단의 경주 탐방은 계속됩니다.

분황사에서 '여왕의 향기가 가득한 절'을 보았고, 반월성에서 천년동안의 신라 궁궐터를 보았으며 계림에서는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을 살펴보았다.

이곳 첨성대에서는 무엇을 보고 들을까?

 

첨성대

국보 제31호

첨성대는 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신라 27대 선덕여왕(632~647, 재위15년)때 세월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기이편 제1권 선덕여왕 지기삼사의 마지막에 "이 임금 때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첨성대의 구조를 살펴보면

높이는 9.014m이며, 4.16m지점에 1m정도의 출입구가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을 통하여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별자리를 관측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 중간의 구멍 안쪽에는 각목을 걸친 흔적으로 추정되는 홈이 있고, 그 안쪽에는 사다리를 걸치기에 편리하도록 튀어나오게 끼워 넣은 석재들이 있다. 이렇게 사다리를 통하여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이 제일 위쪽에 설치된 다락위에서 하늘을 관측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의 돌의 수를 보면 362개 인데, 이는 음력 1년을 의미하고, 27단은 27대왕을 의미하며 맨위 우물정자의 돌과 합친 28수는 기본 별자리와 같다는 것은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것인지는 알길이 없다.

 

 

선덕여왕은 왜 이곳에 첨성대를 세웠을까?

당시의 왕은 '하늘의 뜻을 받아 땅을 다스리는 자를 왕'이라 생각했고 현실 정치의 잘 잘못에 대하여 하늘이 자연 재난을 통해 징계를 하고 또 새로운 뜻을 알려준다고 믿었지 않나 싶다.

그래서 하늘을 관찰하여 괘변이 있으면 이를 임금님께 빨리 보고를 하기 위해 반월성 궁궐 가까운 곳에 첨성대를 축성하여 일관을 배치하고 하늘의 변화를 수시로 보고 받았을 것이다.

요즘 천문대는 깊은 산 꼭대기에 세울까? 왜나면 도시 지역에는 대기가 맑지 못하여 별을 관찰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또 밤에는 주위의 밝은 불빛때문에 별을 관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첨성대의 가까운 주위, 특히 북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첨성대위에서 북쪽 하늘의 북두칠성을 가운데 두고 주위의 별들을 비교 관찰하였다고 한다.

 

 

첨성대는 전 세계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천문대중에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아주 과학적인 구조 때문이다. 물론 기초도 튼튼히 다지고 출입구 아래에는 흙과 자갈로 채워져 있다. 무게의 중심이 아래에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안으로 들여쌓기를 하였다. 위쪽은 두 곳에 걸쳐 긴 장대석으로 반대편과 서로 연결하여 튼튼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꼭대기 정자석은 무게를 아래로 골고루 분산시켜 잡고 있는 역활을 한다.

 

 

가을의 하늘이 구름이 잔뜩 끼여 있어 멋드러진 사진을 기대하기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첨성대를 둘러보고 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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