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여행

[문화재답사/수원] 수원 화성행궁 - 사적 제478호

들꽃(野花) 2011. 4. 4. 06:00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 사적 제478호

소재지 :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번지 외

 

[수원여행] 조선 최대규모의 별궁 화성행궁 들러보기

 

수원으로의 나들이

이제 화성행궁으로 길을 떠납니다.

수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수원화성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한민국의 관광명소의 '으뜸명소'로 지정한 화성이 떠오릅니다.

그 수원화성의 성곽 한 가운데에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별궁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바로 화성행궁입니다.

 

행궁은

국왕이 지방에 거동시 머물던 별궁으로 이곳 화성행궁은 정조임금이 원행시 임시거처 하던 곳으로 평시에는 관아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봉수당과 장락당을 비롯한 총 44동 575칸 규모의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행궁으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고 노인잔치를 여는 등 효를 몸으로 실천하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모두 훼손되고 낙남헌만이 신풍초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었으나 1996년 화성 축성 200주년을 맞아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복원사업이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문화재입니다.

 

 

신풍루

 

홍살문앞의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화성행궁 상설한마당 개막식을 맞아 각종 행사들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저 속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어서 이렇게 주변을 담아봅니다.

 

화성행궁 앞에 있는 노거수입니다.

 

화성행궁의 모형도

 

 

남군영

 

봉수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우측에 있는 민속놀이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학생들이 널띠기르 하고 있네요.

그런데 실력이 엉망입니다.

 

 

노거수가 죽어가고 있군요.

그래도 새로운 가지에서 새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화성행궁에는 관광객이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봉수당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정당)이었으며, 정조가 수원행차시 머물렀던 곳이다.

평상시에는 수원유수부의 동헌으로써 유수가 집무하던 곳입니다. 1789년 9월 25일 완공되었으나 일제때 파괴되었다가 복원한 것입니다.

봉수당은 정조의 을묘원행시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열린 공간으로 정조는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의미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면서부터 봉수당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진찬연에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초등학생이 스탬프찍기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불러 스템프찍은 것을 한장 담아보았습니다.

 

화성성역의궤

 

낙남헌

 

유여택

이곳은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가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게 되면 잠시 머무름 신하를 접견하는 곳으로 이용되던 건물입니다.

 

 

비운의 사도세자를 생각나게 하는 뒤주입니다.

뒤주는 우리 식생활의 주식인 곡식을 보관하는 생활 용기이지만, 사도세자의 뒤주에서의 죽음으로 인하여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 물건입니다.

이것은

뒤주에서 돌아가신 사도세자의 옛 일을 체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외정리소

정리소는 1795년 을묘원행에서 펼쳐진 각종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기관으로 화성성역이 끝난 후 외정리소라 하여 화성행궁에서의 행사준비를 담당하던 관청입니다.

 

방향이란 악기로

철판 16개를 편종과 같은 순위에 따라 벌여 놓은 악기이기 때문에 '철향'이라고도 합니다. 방향은 편종과 같이 16개의 철판의 크기는 모두 같으나 살이 두꺼우면 음이 높고 살이 얇을면 그 음이 낮게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