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여행

[제천여행] 결혼식이 끝나고 기차시간이 있어 들렸던 추억 속 청풍문화재단지를 찾아

들꽃(野花) 2011. 7. 14. 06:00

[제천여행] 결혼식이 끝나고 기차시간이 있어 들렸던 추억 속 청풍문화재단지를 찾아

 

1992년 4월 12일

집사람과의 인연으로 백년가약을 맺은 날이다.

그런데 왜 제천여행에서 결혼날짜를 거론하느냐?

다름 아니라 결혼식이 끝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기차 시간이 여유가 있어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찾아왔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로도 이곳은 제천에 오면 가끔식 들르는 여행코스 중 하나이지만 이렇게 올 때마다 항상 새롭고 들뜨게 만든다.

아마 그날의 추억 때문이리라.

 

청풍문화재단지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호 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의 문화재를 한곳에 모아 놓은 곳으로 청풍호 연안 망월산성 기슭에 1982~85년에 걸쳐 총면적 54,486㎡에 조성된 문화재단지이다.

남한강 상류인 이 일대는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이곳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선돌 등의 거석문화재와 민가·향교·관아 등을 나누어 복원·배치했으며, 고가(古家) 내에는 생활유품 1,600여 점을 옛 풍속대로 전시해놓았다. 중요한 문화재로는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제528호) ·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금남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금병헌(錦屛軒: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응청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팔영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후산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수산지곡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도화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황석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청풍향교(충청북도 기념물 제64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청풍 팔영루 

  옛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으로 고종(재위 1863∼1907)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이라고 한 자리에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안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비가 내리고 있어 사진찍기에 불편하지만 그래도 여행이 즐거워 전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청풍대교

 

농가의 모습이 정겹다.

망태기 둘러메고 들로 산으로 다니던 추억이 떠오른다.

건물 왼쪽 끝에 있는 것은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시골집에 가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무를 빼 내어 곳간 가득 벼를 싸 놓았던 기억이 난다.

 

비는 내리고 빗 속에 정겨운 한옥을 보고 있자니 추억 여행을 떠나온 것 같다.

 

비가 내리니 연녹색 나뭇잎이 눈을 환하게 해 준다.

 

연자방아 

 

 

 

비석군 

 

고인돌군 

 

 

보물 제528호 제천 청풍 한벽루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올려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구조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 건물 안에는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93호 청풍망월산성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해발 373m의 망월산 정상을 돌로 둘러쌓은 작은 성으로, 둘레는 495m이다.‘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청풍은 고구려의 사열이현이었는데, 신라에 귀속되어서는 경덕왕 16년(757)에 청풍현으로 고쳐져서 내제군으로 개칭한 제천의 영현이라 한 것으로 보아 사열이현시대에 이 성이 쌓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성벽은 서남면에 너비 16m, 높이 3m와 남쪽에 너비 15m, 높이 4.6m가 완전한 모습으로 잘 남아 있다.

 

비오는 날의 청풍호와 금수산, 저 호수 건너 청풍리조트와 청풍랜드 등이 보인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제천청풍응청각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건물로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는데, 충주댐 공사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세웠는데,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다. 2층은 앞면만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 기둥을 세웠으며 난간을 둘렀다. 동남쪽으로 3단의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단청이나 다른 색칠을 하지 않고 목재면을 그대로 둔 집으로 비교적 소박한 누각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청풍 금병헌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이라고 전해지는 이 건물은 명월정이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처음 지어졌으며, 영조 2년(1726)에 다시 옮겨 짓고 이름을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광무 4년(1900)에 전체적으로 보수하였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의 오른쪽은 대청이고 왼쪽은 온돌방이다. 죄인을 가두어두던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에 없어졌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제천 금남루

 

  조선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 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재단지 안으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탁 트여 멀리있는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한다. 

 

 

보물 제546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비가 내리고 시간상 망월산성에는 오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