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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여행]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진도의 바닷길

들꽃(野花) 2012. 1. 6. 06:30

[진도여행]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진도의 바닷길

 

머나먼 남쪽나라로 떠난 여행, 그 마지막 지점에 진도라는 섬이 있다.

인천에서 목포로, 다시 해남을 거쳐 진도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길을 찾아왔다.

진도대교를 통과하면서 시작된 진도여행은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금골산의 아름다음에 잠시 넋을 잃고, 배중손과 삼별초가 중심이 되어 대몽항쟁을 벌였던 용장성에 들려 고려의 기상을 널리 알렸던 그 모습을 기리며 오늘의 중요한 여행 중 하나인 신비의 바닷길을 보려한다.

 

추수하는 가을 들녘을 보며 한가한 길을 달린다. 다들 단풍을 보려 북쪽으로 갔는지 차량들이 많지가 않다.

운전 중 간간히 보이는 바다를 보니 섬에 오기는 온 모양이다.

진도의 바닷길, 신비의 바닷길

방송이나 사진에서 많이 보았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고파서 찾아간다.

사는 곳이 인천이라 서해안의 바다현상을 조금은 알고 있기어 바닷길이 갈라지는 현상은 달의 인력으로 생긴다는 것을 알지만 이곳 진도를 찾아가는 여행길에는 음력을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다.

 

한가로운 길을 달려가니 신비의 바닷길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표지판이 보여 차를 그리로 몰고 들어간다. 바닷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넓은 광장과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게 한적한 시골의 바닷가를 동경하며 찾은 나의 바람이 헛된 꿈이란 것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곳을 설명하는 안내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디가 시작점인지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냥 길이 있기에 바닷가 쪽으로 가니 좌측에 작은 조각물이 보이고(뽕할머니 상, 처음에는 몰라서 그냥 지나쳤다) 수산물을 파는 마을 주민인지 두 분이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보인다. 여기가 아닌가 하고 그냥 지나쳐 앞으로 가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넓은 광장과 야외 공연무대가 보인다. 그리고 산 쪽으로는 산을 깎아 만든 객석이 보이고 그 아래 작은 사당 같은게 눈에 들어온다.

사당 같은 작은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안내판을 보니 뽕할머니의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진도의 바닷길을 찾아온 여행은 시작되었다.

 

 

 

명승 제9호로 지정된 진도의 바닷길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자연현상으로 신비의 바닷길로 불리는데, 조수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마치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나타나는 바닷길은 길이가 2.8㎞, 폭 10∼40m이며 지형적 요인과 함께 달과 태양의 위치가 1년 중 지구에 가장 강한 인력을 미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해류의 영향으로 바다 밑에 모래언덕이 발달하고 조수간면의 차에 의해 바닷물이 낮아질때 이 모래언덕이 수면위로 드러나 마치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큰 차가 다닐만큼 단단하다. 약 1시간동안 계속되는 이 바다갈림 현상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인 피에르 랑디가 진도개의 상태를 보러 왔다가 이를 보고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뒤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진도 주민들은 예로부터 바닷길이 가장 크게 열리는 봄(2∼4월)과 가을(9∼10월)의 그믐과 보름사리 때 마을의 수호신인 뽕할머니와 용왕에게 어업과 농사의 풍년을 비는 영등제를 함께 지내왔다. 현재 영등제(靈登祭)는 진도의 모든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종합축제로 발전되어 매년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뽕할머니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면(안내판의 내용)

 

조선초기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도중 풍랑으로 표류하여 지금의 회동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마을을 호동이라 불렀다.

그 후에 호랑이의 침해가 날로 심해져 살기가 어렵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의신면 '모도'라는 섬마을로 피하면서 황망중에 뽕할머니 한분을 호동마을에 남기고 말았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어느날 꿈 속에서 용왕님이 나타나시어 "내일 무지개를 내릴터이니 바다를 건너가라"는 선몽이 있어 모도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하고 있던 중 갑자기 호동의 뿔치와 모도 뿔치 사이에 무지개처럼 치등이 나타났다. 그 길로 모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뽕할머니를 찾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호동에 도착하니 뽕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면서 기진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를 본 주민들은 뽕할머니의 소망이 치등으로 변하였고 영이 등천하였다하여 영등살이라 칭하고 이곳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그후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멀리서 찾아왔건만 저 바다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내게는 보여주려 하지 않는가 보다.

지금이 10월이라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음력을 보지 않고 떠난 여행이라 혹시나 하며 길을 잡은 것이다.

역시 나의 바람은 저 바다에 던져버려야겠다. 

 

짙푸른 바다 건너 나타나는 작은 섬을 보고 있자니 동화 속의 인물들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넓은 광장에 서 있는 무대

성수기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지금은 고요하기만 하다.

 

 

 

 

 

꼭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면서 객석을 만들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바닷 속이 다 보일 정도로 바닷물이 맑다.

 

요렇게 사진 찍으니 괜찮아 보이네.

 

한가하고 여유로워서 좋다.

 

 

처음 지나쳐 온 곳으로 다시 간다.

뽕할머니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호랑이와 뽕할머니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에서 오싹함이 든다.

 

 

호랑이의 힘찬 표호소리와

뽕할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비는 모습에서 우리네 선조들의 민간 신앙을 보게 된다.

 

 

수산물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지금 보는 이곳으로 저 앞의 모도 섬으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행을 떠날 때에는 제법 준비한다고 하는데 때론 이렇게 준비가 안 되어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가 종종 있다.

뭐 그러면서 배워가는 거지.

그래서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말이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 많은 관광객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이렇게 한가로운데.

 

 

저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신비의 바닷길

 

 

 

진도의 바닷길을 빠져나와 왼쪽길로 조금 달려가니 삐에르랑디공원이라는 작은 언덕이 나온다.

어떤 공원이길래 이름부터 색다를까 하고 차에서 내려보니 작은 언덕 위에 누구의 동상인지 하나가 서 있는게 보여 그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삐에르랑디 상이라 하여 방문 기념비와 조각상이 서 있다.

내용인 즉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인 피에르 랑디가 진도개의 상태를 보러 왔다가 이곳의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을 보고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것에 대하여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삐에르랑디

 

 

신비의 바닷길이 갈라지는 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이곳에 진도의 바닷길을 세계에 널리 알린 삐에르랑디 상을 조각하여 기념한 것이 이해가 된다.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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