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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진도] 진도 운림산방 - 명승 제80호

들꽃(野花) 2012. 1. 12. 09:15

진도 운림산방 /  명승 제80호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등 (사천리)

 

진도 점찰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운림산방

진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여기를 들려보지 않고는 진도를 다녀왔다고 할 수 없는 곳, 자연과의 어울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운림산방을 찾아간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계절이라 쌍계사와 운림산방의 주차장에는 농부들의 벼 나락 말리기가 한창이다.

나락을 펼쳐 놓은 곳을 피해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다.

내 고향 제천에는 벌써 벼 탈곡이 끝났지만 이곳 남쪽 지방에는 지금 한창 탈곡을 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발생하였으니 잠시 적어본다.

이번 여행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래미가 중간고사 시험도 끝나고 오늘이 딸래미의 귀빠진 날이라 1박2일의 남도여행을 떠나 온 것이다.

잠자는 딸래미를 깨워 새벽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목포, 해남을 거쳐 이곳 진도에 오게 된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딸래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오라 하고 나와 집사람은 운림산방을 찾아 걸어가며 당연히 딸래미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하고 입장표를 끊고 기다리는데 딸래미가 올 시간이 훨씬 자났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다.

집사람이 여기저기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며 아이스크림을 사러간 슈퍼에 가서 물어보니 어떤 아저씨를 따라갔다고 한다고 한다.

다 큰 딸래미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고 큰 걱정을 하며 찾고 있는데 쌍계사 쪽에서 딸래미가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왜 거기에서 오느냐고 소리를 한번 지르니, 딸래미는 얼굴이 굳어 말도 없이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열이 올라 씩씩거린다.

문화재를 찾아 다니는 아빠가 주로 사찰을 많이 가니 당연히 그쪽에 갔을거라 생각하고 그리로 갔던 것이다.

 

이곳 주차장에서 쌍계사와 운림산방이나 기념관쪽으로 갈 수가 있어 누구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소치 허련이 말년에 기거했던 운림산방을 찾아 들어간다.

운림산방은 진도에서 규모가 제일 큰 쌍계사 사찰과 진도의 주산인 첨찰산록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작은 계곡으로 사시사철 흘러내리는 맑고 시원한 물줄기는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과도 잘 어우러져 있다.


정통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시대 말 남화(南畵)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을 당호로 정한 것으로서 일명 운림각(雲林閣)이라고도 한다. 해발 485m의 첨찰산 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운림산방은 첨찰산을 깃봉으로하여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려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을 이루고 있어 소치가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었다. 특히 운림산방의 연못에는 직경 6m크기의 원형으로 형성된 섬이 있고, 섬 중앙에 흉고(둘레) 80cm크기의 소치가 심은 배롱나무가 있다.

 

「소치실록」에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어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서 가히 선경을 꾸몄다고 한다.

누구나 동경하는 말년의 안식처를 고향땅에서 찾아 자연과 벗하며 지낸 소치의 인생철학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소치는 1809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 밑에서 공재(恭濟) 윤두서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2세 때 초의선사(艸衣禪師)의 소개로 추사(秋史)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했다.

 

 

 비록 벽지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 · 서 · 화에 능하여 41세 되던 1848년 7월에 낙선재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임금 앞에서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 권돈인 · 민영익 · 정학연 등을 비롯한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추사가 소치의 예술세계를 이룩하여 준 스승이라면 초의는 서화에 길을 잡아주고 인생의 눈을 틔워준 스승이라 하겠다. 1856년 추사가 이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49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개와 아름다운 첨찰산 밑 쌍계사를 연접한 동편에 자리잡아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파란 하늘과 나뭇잎이 서서히 색깔을 바꿔 입는 것을 바라보며 녹색의 잔디밭이 아닌 누런 잔디밭을 가로질러 매표소를 향해 들어간다.

운림산방이라고 커다란 돌에 써있는 글이 보인다.

 

운림산방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로 안내판에 적혀 있으나 2011년 8월 8일 [명승 제80호 진도 운림산방]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구름이 숲을 이루는 산이 있는 곳이라.....

 

저무는 햇살이 더욱 붉게 느껴진다.

돌로 만들어진 길가 오른쪽에 커다란 노송이 자리잡고 옛적 건물이라고 볼 수 없는 곳에서는 나무의자에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480평 규모의 연못과 점찰산 그리고 연못 중심에 있는 작은 동산이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연못 중앙에 있는 작은 동산의 배롱나무는 소치가 심었다고 한다.

여름날 화려하게 피어 온통 붉게 피어날 배롱나무꽃을 그려본다.

 

연못에는 수련잎이 가득 깔려있다. 수련이 화려하게 핀 여름날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연못과 집이 잘 어우려져 있어 정말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돌길을 천천히 걷는다.

 

고요한 물에 반영된 나무의 모습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정원에는 각종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문이 활짝 열려져 있어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운림산방이라는 현판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방 안과

 

저물어 가는 저녁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여기가 바로 선경이 아닌가 한다.

 

 

초가로 이루어진 집에 곡식을 빻는 절구통이 고풍스러움을 더하고

 

불을 밝혀주는 호롱불과 옛 가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옛날을 떠올려 본다.

 

 

운림사

 

허련의 초상화가 있는 운림사

 

운림사에서 바라보는 초가의 모습에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운림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