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꽃의 문화재답사/명승

[해남여행] 달마산에 비추는 석양빛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에 빠져있는 미황사

들꽃(野花) 2017. 7. 15. 04:17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 (海南 達摩山 美黃寺) / 명승 제59호

 

남도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1박 2일의 여행도 이제 마지막을 장식해야 한다. 물론 여행이 끝났다고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에서 인천 부평까지 머나 먼 거리를 달려가야 하니까 말이다.

 

해남의 수성송, 녹우당, 두륜산케이블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등을 보고 마지막으로 달마산의 미황사를 보러간다.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달마산 미황사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너무나 멋지다는 것을 말이다.

 

대흥사를 둘러보고 달마산의 미황사 가는길

네비게이션 없이 도로의 이정표만을 믿으며 간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저녁시간이 다 되어 너무 늦은감이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황사를 찾아간다.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지 않고 한발자국이라고 가까이 가려고 바로 앞까지 차를 몰고 올라간다.

미황사에 도착하여 서쪽을 바라보니 해넘이가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달마산은 삼황(三黃)이라고 하는데 불상과 바위, 석양빛이 조화를 이룬 것을 말하며, 바위병풍을 뒤로 두르고 서해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는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 창건 이후 각종 역사 문화적 유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마산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는 풍치 절경의 산사이다.

 

도솔봉-달마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의 섬과 미황사, 달마산 일대의 수려한 경관, 산능선부에 풍화에 매우 강한 규암층이 길게 노출되면서 발달한 흰색의 수직 암봉들이 병풍같이 늘어서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달마산 기슭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우리 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조선 선조 31년(1598)에 다시 지었고, 영조 30년(1754)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달마산의 병풍아래 아늑하게 자리잡은 대웅보전

 

 

해의 그림자를 보니 아직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저녁노을 드리운 미황사는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미황사 뒷산이 달마산이어서 그런지 달마상이 절 왼쪽에 서 있다.

 

 

눈부시게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미황사에 저녁노을이 드리운다.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이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보물 제947호

블로그 찾아가기 : http://blog.daum.net/pjb1223/13349968


석가모니 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주춧돌은 앞면 4개와 옆면 2개를 특이하게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돌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자연석을 썼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를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미황사 뒷산에는 ‘토말(土末)’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데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표시한 것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참조)

 

미황사 괘불탱

보물 제1342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찾아 가기]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하는데,

미황사 괘불탱은

화면 가득히 본존불을 배치하고, 아랫부분에 용왕과 용녀의 모습을 그렸다. 

크기는 길이 1170㎝, 폭 486㎝로, 화면 가득히 본존불을 강조한 뒤,

아랫부분에 용왕과 용녀의 모습을 그렸다.

본존의 얼굴은 귀·눈·입·코 등이 작으며,

정수리 부분에 상투 모양의 육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윤곽선만 표현되었고,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안에 입은 옷은 가슴을 드러내어 허리부분에서 띠매듭을 묶었고,

옷은 격자무늬를 장식하여 18세기 후반기 그림에서 보이는 문양을 엿볼 수 있다.

이 괘불은 조선 영조 3년(1727)에 탁행·설심·희심·임한·민휘·취상·명현 등이 그렸는데,

본존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녹색과 적색의 밝은 선염(渲染)과 녹두색·분홍·황토색이 사용되어

은은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3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찾아 가기]

 

 

 

 

해남 미황사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찾아 가기]

 

 

 

 

해남 대흥사 응진당

보물 제1183호

블로그 찾아가기 : http://blog.daum.net/pjb1223/13349966

 

응진은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이며, 아라한·나한은 수행을 거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응진당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십육나한이나 오백나한을 모신다. 미황사 응진당에는 안쪽 벽면에 그림으로 십육나한을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기둥 윗부분에는 장식이 조각되어 있는 등 조선 후기의 양식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해남 미황사 응진당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나한상 일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5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찾아 가기]

 

 

 

목 아래가 없어진 불두가 응진당 담 한켠에 서 있다.

 

 

고요한 산사의 저녁 풍경

 

 

응진당 뒤에는 동백숲이 조성되어 있다.

 

 

저녁 예불을 보는 시간이라 종소리가 온 산야에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

 

 

캄캄한 저녁 산사에 어둠이 깔리고 저 멀리 붉게 물든 저녁놀이 하루 해를 마감하고 있다.

 

 

 

 

 

 

타는 듯한 저녁놀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하늘에는 붉은 햇기운이 감돈다.

 

 

어느새 달이 달마산에 걸쳤네요.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찾아가는 곳

해남 미황사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미황사(서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