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여행

[경주여행]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세운 감은사와 삼층석탑

들꽃(野花) 2012. 3. 29. 05:00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세운 감은사와 삼층석탑

 

경주여행에서 동해바다를 보러 떠난다면 놓치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문무대왕릉과 감은사다.

경주에서 동해로 가는 길에 감은사지와 삼층석탑을 보고 문무대왕릉을 보기도 하나 오늘은 이견대에 올라 푸른 바다에 떠 있는 문무대왕릉을 보고 봉길해수욕장 해변가에서 문무대왕릉을 좀더 가까이 살펴본 다음, 다시 경주로 길을 잡아 감은사지에 들러 삼층석탑을 보는 코스로 정했다.

 

감은사는

경주의 동쪽 감포로 가는 길 좌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국보 제112호로 지정된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 있다.

감은사는 신라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을 빌어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였으나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국보 제112호로 지정된 금당 앞의 쌍탑은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 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개에 이르는 부분 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보물 제366-1호)와 금동 사리외함(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적 제31 경주 감은사지

파란 하늘 아래 덩그러니 서 있는 탑과 빈 절터만이 그 시대의 영화를 말해준다.

 

국보 제112호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서탑

 

동탑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육중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삼층석탑

 

 

예전에는 이곳이 바다였을 거라는 해설사님의 말씀

 

파란 하늘과 벗하며 늠름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

 

저 멀리 동해가 보일려나?

 

바람에 풀이 눕는다.

 

육중하게 서 있는 동탑

 

절이 언제 없었졌는지 기록은 없지만 보는 것과 같이 주변에 많은 석재들이 놓여 있다.

 

 

금당의 정면

 

금당의 석재들

 

 

금당 아래 구멍을 뚫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 문무왕이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넓은 절터

 

부재들

 

감은사의 가람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