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의 철학
경주 교동에 가면 만석꾼의 철학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어떤 집일까? 궁금하다.
물론 지금처럼 만석꾼의 철학이니 자신을 지키는 지침인 육연(六然), 또한 집안을 다스리는 지침인 육훈(六訓) 이 강조되기 전에 경주를 다녀갔었는데 그때 계림을 톻해 향교와 최씨고택, 그리고 교동법주를 들른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만석꾼의 철학이 강조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겉만 보고 갔던 그 시절보다 이렇게 최부자집의 내력을 알게되니 다행이다. 많은 홍보를 하여 현대인들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최씨고택의 안으로 들어가니 좌측에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써있다.
"9대진사, 12대 만석꾼의 철학이 있는 곳"
최부자집은 " 재물은 똥거름과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고 골고루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라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육훈'과 '육연'을 가슴에 새겨 '베푸는 삶'을 실천했다고 한다. 최부자집 사람들의 실천의지는 중용과 의로움이다. "치우치지 말고, 성급하지 말고, 욕심내지 않는다. 어느 것이든 완벽한 가치는 없으며, 좌우에 치우침이 없이 의롭게 산다" 이런 중용의 덕을 매어 심기 위해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증조부 최세린의 호는 '대우(大愚 : 크게 어리석음)'였으며, 부친 최현식의 호는 '둔차(鈍次 : 재주가 둔해 으뜸가지 못함)'이었음을 알 수 있듯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경주교동최씨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27호)은
경주 최씨의 종가로 신라시대 '요석궁'이 있던 자리라고 전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9대째 대대로 살고 있으며 1700년경 이 가옥을 지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건물 구성은 사랑채·안채·대문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대문채에는 작은 방과 큰 곳간을 마련하였다. 사랑채는 안마당 맞은편에 있었으나 별당과 함께 1970년 11월 화재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사랑채터 뒷쪽에 있는 안채는 트인 'ㅁ'자형이나 실제로는 몸채가 'ㄷ'자형 평면을 가지고 있고 'ㄱ'자형 사랑채와 '一'자형 중문채가 어울려 있었다. 또한 안채의 서북쪽으로 별도로 마련한 가묘(家廟)가 있는데 남쪽으로 난 반듯한 길이 인상적이다. 안채 뒷편으로 꽃밭이 있어 집 구성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양반집의 원형을 대체로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최부자집의 가르침인 육연(六然)과 육훈(六訓)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육연(六然) : 자신을 지키는 지침
- 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 대인애연(對人靄然) :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
-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지고
- 유사감연(有事敢然) : 일을 당해서는 용감학 대처하며
- 득의담연(得意痰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육훈(六訓) : 집안을 다스리는 지침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최부자집
안채
육연
육훈
사당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
문파 최준(1884-1970) 선생은 이른바 9대 진사, 12대 만석의 마지막 부자로 이곳 교촌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영남의 대지주로서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특히 대한광복회에서 재무를 맡아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와 더불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또 이곳 사랑채에서 백산 안희제선생과 함께 백산상회 설립을 결의하고 대표에 취임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선생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공적을 남겼다.
이밖에 선생은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문화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1920년에 경주고적보존회를 설립하고 1932년 정인보선생 등과 [동경통지]를 편찬하는 등, 신라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해방 직후 선생은 나라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면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니, 곧 오늘의 영남대학교 전신이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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