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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금산] 청풍사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호

들꽃(野花) 2012. 6. 15. 06:00

청풍사 (淸風祠)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호

소재지 : 충남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246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분인 충절공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건물이다.

 

  길재 선생은 1353년(공민왕 2년) 경상도 선산에서 태어났으나, 부친 원진이 금주지사로 부임하였을 때 선생도 함께 와서 신씨의 가문에 장가들어 이곳에 살게 되었다.

 

  길재 선생(1330~1419)은 고려말∼조선초의 학자로, 개경에 가서 이색·정몽주·권근 등 여러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몇 차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같은 마을에 살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후의 태종)과 두터운 친분을 맺었다. 1390년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늙은 어머니를 모신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된 후 1400년(정종 2년)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이 그에게 태상박사의 관직을 주어 불렀으나 글을 올려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뜻을 폈다. 왕은 그 절의를 갸륵하게 여겨 예를 다해 대접하였으며, 집안의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 삼은으로 일컫는다.

 

  길재를 흠모하는 학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경전을 토론하고 성리학을 강해하였으며, 오직 도학을 밝히고 이단을 물리치는 것으로 일을 삼으며 후학의 교육에만 힘썼다. 길재의 문화에서는 김숙자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되어,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학통이 이어졌다.

 

  문집으로는 『야은집』, 『야은속집』이 있으며, 1573년(선조 6)에는5세손 길회가 흩어져 있는 시문과 역대 제현들의 찬영을 모아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야은선생언행록』을 간행하였다.

 

  조선 영조 37년(1761)에 금산군수로 부임한 민백홍이 유림의 요청에 의하여 세운 것으로 사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마을 이름도 선생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는 충절을 길이 우러러 사모하기 위하여 ‘불이(不二)’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청풍사의 앞쪽에는 백세청풍비(百世淸風)와 지주중류비(支柱中流)가 있는데, 백세청풍비(百世淸風)는 선생의 충절과 평생 동안 한 일을 전해주고 있으며, 뜰에는 ‘선생의 충절이 황하(黃河)의 급류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지주(支柱)와 같다’하여 세운 지주중류비(支柱中流)가 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삼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