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여행] 신과의 만남을 통해 살펴 본 백제의 제사 - 국립부여박물관
신(神)과의 만남
백제의 제사(祭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야외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 데 특별한 플랜카드가 보여 찾아가보니
신과의 만남, 백제의 제사라는 타이틀로 특별한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전시기간 12년 5.25 ~ 8.19)
자연에 의지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가끔 그 소중함을 잊고 삶니다.
홍수와 가뭄, 흉년, 질병 등의 재해가 닥친다고 해도 그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려 합니다.
옛날에는 어떠했을까요?
선사와 고대 사람들은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앞에서 한없이 자신의 존재를 낮추고 제사를 통해 빌고 또 빌었고, 그 대상은 하늘과 땅, 바다에 사는 모든 신들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제사람들이 신을 향해 어떻게 제사를 지냈는지 살펴보고, 작은 유물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그들의 기원과 소망을 들어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합니다. - 2012.5
전시내용을 살펴보면
1. 나라의 운을 빌다.(국가제사)
2. 무덤과 노천에 남겨진 제사의 흔적
3. 풍요와 삶, 바다
4. 풍년을 기원하다.
5. 제사에 쓰인 물건들의 의미를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신과의 맘남,
백제의 제사
삼국시대 기록 중에서 백제의 제사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며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곳곳에서 확인되 제사유적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특해 국립부여박물관이 발굴한 부여 논치 유적과 궁남지 유적은 농경 관련 제사 유적으로 수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고대 국가에서의 제사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국가행사일 뿐만아니라,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도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제사 관련 유적은 인간이 현실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일들을 신과의 만남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기원의 흔적입니다.
부여 논치 유적
충남 부여군 구룡면 동방리의 산 정상부에 위치한 논치 유적은
국가적인 차원의 제사보다는 지방의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마을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이 산 정상부의 아래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여기서 지낸 제사는 농경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농경과 관련된 제사는 기우재나 추수감사제가 있다.
논치 유적의 성격은 일부러 깬 토기와 가락바퀴, 곡식, 철기 등으로 볼 때 한해의 수확을 마치고 풍년에 대해 감사드리는 제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사에 쓰인 토기는 어떻게 했을까?
제사에 쓰인 물건들 중에 토기들은 모두 깨서 버렸다. 작은 토기들은 그대로 던져서 깨지만, 큰 토기들은 들기도 힘들 정도로 매우크다.
큰 토기들은 어떻게 깼을까? 부여 논치 유적에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다.
부여 논치 유적은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조각난 토기들 주변에 주먹만한 돌들이 발견되었다.
이 돌들은 산에서 구하기 힘든 강돌인데, 왜 산 정상에서 발견된 것일까?
혹시 들기 힘들 정도로 큰 토기들을 땅바닥에 놓고 돌들을 던져서 깬 것은 아닐까 한다.
제사에 쓰인 물건을 묻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6 문무왕 5년
문무왕 5년 가을 8월 ... 왕이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에서 맹약을 맺었다... 이때 이르러 흰 말을 잡아 맹세하였는데, 먼저 하늘과 땅긔 신 그리고 내와 골짜기 신에게 제사지낸후 그 피를 마셔따... 피를 마신다음 희생과 예물을 북쪽 땅에 묻고...
백제의 제사유적에서 제사용 물건들을 땅에 묻는 모습은 문무왕 5년의 한 사건을 통해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고대의 제사는 한번 제사에 쓰인 물건들을 재활용하지 않고 제사를 지낸 장소 어딘가에 묻었다. 따라서 고대의 제사용 물건들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확인되는 유적은 과거 그 주변에서 제사가 행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측은 부여논치유적으로
해발 76m의 야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덩이 15기 정도가 확인되었다. 이 구덩이에서는 많은 양의 깨진 토기조각과 가락바퀴, 곡식,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평야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출토된 유물들이 농사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농경과 관련된 기우제나 풍년을 감사드리는 제사가 행해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좌측은 부안 죽막동 유적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북 부안군 죽막동의 변산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바다의 용왕을 향해 제사를 지낸 곳이다.
현재에도 수성당이라는 곳에서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인 수성할미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죽막동 유적에서는 특별한 유구가 없이 수 많은 토기조각들과 돌로만든 각종 모조품, 흙으로 빚은 말과 인형 등 생활용품으로는 보기 힘든 유물들이 출토되어 제사를 지내고 난 이후 물건들을 버린 흔적임을 알 수 있다.
우측은 부여 궁남지 유적으로
궁남지 유적(사적 제135호)은 부소산의 남쪽 저습지에 위치해 있는 백제시대 인공 연못이다.
이 연못 주변지역 발굴조사에서는 수로와 수전 농경 흔적과 함께 새 모양 목제품을 비롯한 말뼈, 토기 조각, 복숭아와 살구씨 등의 유물들이 춭토되었다.
좌측은 부여 관북리 유적으로
부소산 기슭에 위치한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제428호)에서는 연못을 비롯하여 도로, 하수도, 건물터 등이 발견되었다.
남쪽으로 나란히 세워진 건물터에서는 '北舍(북사)'라는 글자가 새겨지거나 여러 사람의 얼굴이 찍힌 토기 조각들과 정갈한 최고급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을 통해 이곳이 제사에 사용된 물건들을 보관하는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측은 공주 정지산 유적으로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하며, 정지산의 북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제사시설이다.
위치상 북쪽과 서쪽은 금강에 접해있고, 주변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이렇게 외부와 차단된 이곳에서 기와를 얹은 여러 채의 건물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산 아래에 무령왕릉이 위치하고 있어 무덤을 만들기 이전까지 시신을 안전하게 모셔두기 위한 시설도 파악된다.
좌측은 서울 풍납토성 유적으로
한성 백제의 왕궁이 있던 풍납토성의 경당 지구안에서 조사된 9호 구덩이에서는 다른 폐기장 구덩이와는 달리 10마리 정도의 말머리뼈와 소형의 고급토기, '大夫(대부)'와 '井(정)'이란 글자가 새겨진 항아리, 흑으로 빚은 말, 운모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과 토기에 인위적으로 깬 흔적이 남아있는 점으로 볼 때 국가제사를 지낸 후 사용한 물건들을 묻었던 흔적임을 알 수 있다.
1. 나라의 운을 빌다. 국가제사
고대국사에서 제사는 국가의 안녕과 왕실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백제 제사는 4계절의 중간 월마다 하늘과 5제(五帝)의 신에게 지내는 계절제사, 시조묘 제사, 비정기적으로 하늘과 땅의 신을 위한 제사 등이 있었다. 이런 제사들은 백제의 수도였던 한성(서울 풍납토성) - 웅진(공주 정지산 유적) - 사비(부여 관북리 유적)지역세어 제사 관련 유적들이 각각 확인 되고 있다.
서울 풍납동 유적
공주 정지산 유적
2. 무덤과 노천에 남겨진 제사의 흔적
왕의 시신을 묻는 과정에서 성대한 제사의식이 있었고, 많은 음식들이 차려졌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물들 중에서 백제의 무덤 제사 음식으로 사용되었을 만한 유물로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어뼈와 원주 법천리 고분에서 발견된 다양한 어류의 뼈들이 있다.
이밖에도 부여 궁남지 유적의 수로나 공주 공산성 유적의 구덩이에서는 제물로 바쳐진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들을 통해 작은 공간에서도 제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부여 궁남지 유적
3. 풍요와 삶, 바다
백제가 외부와 연결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인 서해바다는 수 많은 섬들이 있어 조류의 흐름이 복잡하여 항상 위험하였다.
이곳을 지나다니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위험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바다의 신을 향해 제사를 지냈으며, 그 대표적인 곳이 부안 죽막동 유적이다.
이 유적은 육지에서 서해안으로 돌출되어 잇는 변산반도 끝자락에 위치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바다의 용왕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배를 타고 향해를 시작했을 것이다.
부안 죽막동 유적
4. 풍년을 기원하다.
농경과 관련된 고대의 제사는 수확의 시기인 10월에 열렸던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과 부여의 영고 등이 있다. 그러나 백제에는 농경제사와 관련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부여 논치 유적에서는 다량의 토기 조각들을 비롯한 곡식과 철기, 석기들이 산 정상ㅂ에 만들어진 긴 구덩이 안에서 춭토되었다.
이곳은 한해 농사를 마치고 풍년을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던 공간으로 백제에서도 농경제사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5. 제사에 쓰인 물건들의 의미
고대 제사에서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특이한 문건들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나무로 만든 새, 남근 모양의 토기 손잡이, 흙으로 빚은 인형과 말, 돌로 만든 매미, 칼, 거울, 종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제사만을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유물 자체의 쓰임보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원을 적어 나무에 묶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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