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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서울]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 사적 제361호

들꽃(野花) 2013. 1. 17. 11:28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서울 永徽園과 崇仁園) / 사적 제361호

소재지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204-2외

 

  영휘원은 조선 제26대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嚴氏)(1854∼1911)의 원(무덤)이고, 숭인원은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영왕, 영친왕)의 큰아들 이진의 원이다.

 

 

순헌귀비 엄씨는 철종 5년 증찬정 엄진삼의 장녀로 8살에 경복궁에 입궐하여 명성황후의 시위상궁(侍衛尙宮)이 되었다.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후 아관파천 때 고종을 모시고 후궁이 되어 1897년 아들 은(영친왕)을 낳아 귀인이 된 후 순헌황귀비 칭호를 받고 경선궁에 살았다. 그 후 여성들의 신교육을 위해 1905년 양정의숙과 1906년 진명여학교을 설립하였고, 명신여학교(현 숙명여자대학교)가 재정난을 겪자 200만평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엄귀비는 일본이 고종황제를 태왕으로, 순종황제는 조선왕으로, 순종황제의 이복동생인 의민황태자를 영친왕으로 강등시킨 시기를 보냈으며, 의민황태자가 일본에 볼모로 간 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는 모습도 활동사진으로 보게 된다. 1911년 7월 20일, 춘추 58세에 서거하여, 순헌(純獻)의 시호가 내려지고, 8월에 양주 천수산(天秀山)에 무덤을 만들고, 원호를 영휘라 하였다. 신위는 청와대 경내 칠궁에 있는 덕안궁에 모셔져 있다.

 

 

영휘원(英徽園) 경내에는 손자 이진(李晋)(영친왕(英親王)의 아들)의 묘(墓)가 있으며 원래 이곳은 이왕가의 가족묘지로 정해 놓았던 곳이며 명성황후(明成皇后) 민비(閔妃)의 릉(陵)인 홍릉(洪陵)이 있었으나 1919년(年) 3월(月) 경기도 남양주시(당시 미금시) 금곡동에 고종황제(高宗皇帝)와 합장하기 위해 천장하였다.

 

 

묘(墓)의 시설로는 봉분(封墳)(병풍석무(屛風石無)) 곡장(曲墻) 혼유석(魂遊石) 문인석(文人石) 망주석(望柱石) 장명등(長明燈) 석양(石羊) 석호(石虎) 사초지(莎草地)가 조성(造成)되어 있고 묘(墓)앞에 정자각(丁字閣) 비각(碑閣) 홍살문(紅箭門)이 있으며 영휘원과 숭인원을 수호 관리하는 재실(齋室)이 있다.

 

<영휘원>

 

 

조선왕릉의 능, 원, 묘의 구분

왕족의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 원, 묘로 분류된다.

능(陵)은 추존왕, 추존왕비를 포함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묘(墓)는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을 일컫는다.

현재 온전하게 남아있는 서울 근교의 왕릉은 40기, 원은 13기이다.

 

 

 

 

 

 

 

 

 

 

 

 

 

 

<숭인원>

 

숭인원에 안장된 이진은 1921년 8월 일본에서 태어나 부모(의민황태자, 이방자여사)와 일시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5월, 생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풍습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장례를 치룰 수가 없었으나, 순종황제가 이진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어른의 장례와 같게 치르도록 하고 원호를 숭인(崇仁)으로 내리고, 할머니인 순헌귀비 엄씨의 영휘원 남측에 조영하였다.

 

 

 

 

 

 

 

 

 

 

 

 

 

 

 

 

 

 

 

 

 

천연기념물 제506호 서울 영휘원 산사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