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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진천] 진천 이상설 생가 -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

들꽃(野花) 2013. 8. 23. 05:00

진천 이상설 생가 (鎭川 李相卨 生家) /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

 

 

  독립운동가인 이상설(1870∼1917) 선생의 생가로, 선생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며 자는 순오, 호는 보재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선생은 7세에 이용우의 양아들로 서울에 올라가 신학문에 뜻을 두고 영어 ․  노서 ․  범률을 배우고 고종 31년(광무 8, 1904)에 문과에 급제, 다음해에 의정부참찬이 되었다. 선생은 이시영, 이규형 등과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통분을 금치 못해 길거리에서 연설한 후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을사보호조약의 폐기를 상소하고, 망명하여 간도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워 교포 자재의 교육에 힘썼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이 독립국임을 주장코자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이준, 이위종과 헤이그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1910년에는 한일합방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1917년 연해주에서 47세로 생애를 마쳤다.


  가옥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흙벽돌로 쌓고 진흙으로 마감한 초가이다. 40여년 전에 무너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수리하였으며 1957년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이때 진천읍 교성리 향교밑에 있던 사당인 숭렬사와 숭모비도 이곳으로 옮겨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현재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